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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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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산돼지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김우진 희곡 <산돼지>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줄거리 서울 가까운 어느 군의 읍내를 무대로 1920년대의 청년 지식인인 최원봉과 누이 최영순‚ 모친 최 주사댁과 원봉의 친구이자 애인인 차혁‚ 원봉의 애인인 정숙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주인공 원봉은 정숙과 애인 관계이지만 정숙은 다른 남자와 일본으로 도망친 상태이다. 원봉은 청년회 상무 간사인데 바자 수입금을 유용했다 해서 청년회로부터 불신임을 당한다. `산돼지`처럼 저돌적이고 괴팍한 성격의 원봉에게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동학군이던 아버지가 관군에게 잡혀 죽자 최 주사가 그를 데려다 키운 것이다. 최 주사는 딸 영순과 원봉을 결혼시키라고 유언했지만 원봉은 정숙과‚ 영순은 차혁과 교제한다. 원봉은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고 있으며‚ 죽은 부친의 유명인 동학 이념을 실현하지 못하는 현실 상황에 좌절하고 신경 쇠약 증세까지 보인다. 정숙이 돌아오게 되고‚ 초봄의 양지밭에서 원봉과 정숙은 서로의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면서 갈등이 해소된다. *이해와 감상 <산돼지>는 주인공 최원봉의 내면적 갈등과 그로 인한 극심한 정신적 갈등 장면을 나열식의 `드림 플레이` 기법을 통해 형상화한 희곡 작품이다. 김우진의 <산돼지>를 비롯한 근대적 희곡이 나오기 전까지의 한국 희곡들은 대부분 신파극조의 성격을 지닌 것들이었다. 이에 비해 김우진의 희곡들은 이러한 설화적 틀을 벗어나 인간 내면의 갈등과 의식 세계를 파고들면서 근대적 성격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산돼지>의 등장 인물들을 주의 깊게 살펴 보면‚ 당대의 전형적 인물들이 설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원봉은 현실과 이상‚ 봉건적인 것과 진보적인 것‚ 개인과 사회 문제에 있어서 저항 의식을 내보이려 했으나 그것을 이겨 낼 만한 뚜렷한 방향이 제시되지 못한 현실의 울타리에 머물고 말았다. <산돼지>는 인물의 내면적 갈등을 부각시키기 위해 표현주의 형식을 상징적 수법으로 사용하였다. 이는 당시의 연극 풍토에서는 공연(公演)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타성화된 기존 의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근대극을 시도해 보려는 김우진의 실험 정신의 소산이었다. 따라서 김우진은 한국 근대 희곡 문학사상 인습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창조를 위해 노력한 작가였다고 할 수 있다. <세부사항> *김우진(1897-1926. 극작가. 호는 초성) 전라남도 장성 출생. 장성군의 관아에서 군수의 장남으로 대어나 7살 때 생모를 잃고 계모 밑에서 성장하며 철저한 유교교육을 받았다. 대지주인 엄부의 명에 따라 일본구마모토 현립 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러나 그 후 부친의 의사를 무시하고 1919. 나체와 마르크스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그의 작품들은 주로 전통적인습의 거부‚ 여성의 경제적·사회적 문제제시‚ 생명‚ 죽음‚ 신‚ 이상 등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 등을 다루었다‚ 1924년 와세다 대학 졸업 후 귀국한 그는 고향인 목포에 내려와 한동안 가업을 이어 상성합명회사 사장으로 지냈으나‚ 윤심덕과의 사랑과 무미건조한 재산관리사무로 자신의 내적 고민을 견디기 어려워 1926년 집을 나와 모든 인습과 전통을 버리고 동경으로 건너갔다. 평소에 말이 적고 대단히 이성적이었던 그가 30세의 젊은 나이에 윤심덕과 현해탄에서 동반자살한 원인은 분명하지 않지만‚ 그들의 죽음은 세간의 대단한 화제 거리였다. 시대적 압력에 의한 절망‚ 인습을 거부한 사랑의 고뇌로 짧은 생애를 독특하게 마감하였지만‚ 그는 ‘20년대 초의 신극 운동의 선구가’로‚ ‘신파극 시대에 최초로 서구 근대극을 제대로 연구하고 쓴 작가’이며 ‘우리 연극사‚ 문학사에서 가장 진지하게‚ 자신의 삶과 예술적인 창작 의욕을 희곡장르를 통해 본격적으로 표현하려 했던 최초의 극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전라남도·전남대호남문화연구소‚“전남향토문화백과사전”‚ 2002 / http://kr.yahoo.com / 한국극예술학회‚“한국현대 극작가론-김우진”‚태학사‚ 1996년에 와세다 대학 예과에 입학해 영문과에 진학하였다. 매우 허약하고 내성적이며 사색적이었던 그는 18살 때부터 시작을 하여 원래의 희망 이였던 시인의 길에 들어섰으며‚ 와세다대 입학 후에는 종합예술인 연극공부와 창작에 몰두하였다. 1920년 봄 ‘극예술협회’를 조직하여 재일 노동자 단체들의 모금운동을 도왔고 최초의 소인극 단체 ‘동우순회극단’을 조직‚ 운영‚ 번역‚ 연출하여 전국 주요도시에 새로운 연극의 씨앗을 뿌렸다. 창작희곡으로는 <정오>‚ <이영녀>‚ <두더기 시인의 환멸>‚ <난파>‚ <산돼지> 등 다섯 편이 있고‚ 번역 희곡은 미필고로 쇼의 <워렌부인의 직업>이 남아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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