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이난영[봄마지]

추천0 조회수 83 다운로드 수 7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이난영[봄마지]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3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1934년에 발매된 이난영의 <봄마지> LP판 <세부사항> *<봄마지> 가사내용 1 어름이 풀려서 물위에 흘으는 흘으는 물 위에 겨울이 간다 어야더야 어--리 노를 저어라 음--봄마지 가자 2 시냇가 수야버들 실실히 늘어져 흘으는 물위에 봄 편지 쓴다 어야더야 어--리 노를 저어라 음--봄마지 가자 *이난영 본명은 이옥례이고‚ 전라남도 목포 출생이다. 15세 때 목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태양극단에 입단‚ 단역가수로서 노래하다가 1934년 OK레코드사에서 손목인(孫牧人) 작곡의 <불사조(不死鳥)>를 불러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이어 <시드는 청춘>‚ <봄맞이> 등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같은 해 도쿄[東京] 히비야 공회당에서 열린 `전국 명가수음악대회`에서는 갈채를 받았다. 1935년 손목인 작곡인 <목포의 눈물>이 크게 히트하여 유명해졌으며‚ 그 후에도 <해조곡(涇鳥曲)>‚ <울어라 문풍지>‚ <흘겨본 과거몽(過去?)>‚ <목포는 항구다> 등 많은 히트곡을 내놓았다. 8·15광복 후는 남편 김해송(金涇松)과 함께 KPK 악극단을 결성‚ 활약하였으나 6·25전쟁 때 김해송은 납북되었다. 그 자녀들은 후에 `김시스터즈`‚ `김보이즈`라는 보컬팀을 만들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활약하였다. 1966년 그녀를 기리는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목포 유달산 중턱에 세워졌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