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 홈
이난영[목포의 눈물]
- 저작물명
- 이난영[목포의 눈물]
- 저작(권)자
-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 출처
- 공표년도
- 창작년도
- 2015-01-23
- 분류(장르)
- 사진
UCI 로고
- 요약정보
- <정의> 오케 레코드사에서 나온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LP 음반. <세부사항> *<목포의 눈물> 가사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나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픔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쩌다 옛 상처가 새로워지는가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는 절개 목포의 사랑 *이난영 본명은 이옥례이고‚ 전라남도 목포 출생이다. 15세 때 목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태양극단에 입단‚ 단역가수로서 노래하다가 1934년 OK레코드사에서 손목인(孫牧人) 작곡의 <불사조(不死鳥)>를 불러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이어 <시드는 청춘>‚ <봄맞이> 등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같은 해 도쿄[東京] 히비야 공회당에서 열린 `전국 명가수음악대회`에서는 갈채를 받았다. 1935년 손목인 작곡인 <목포의 눈물>이 크게 히트하여 유명해졌으며‚ 그 후에도 <해조곡(涇鳥曲)>‚ <울어라 문풍지>‚ <흘겨본 과거몽(過去?)>‚ <목포는 항구다> 등 많은 히트곡을 내놓았다. 8·15광복 후는 남편 김해송(金涇松)과 함께 KPK 악극단을 결성‚ 활약하였으나 6·25전쟁 때 김해송은 납북되었다. 그 자녀들은 후에 `김시스터즈`‚ `김보이즈`라는 보컬팀을 만들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활약하였다. 1966년 그녀를 기리는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목포 유달산 중턱에 세워졌다.
- 저작물 파일 유형
- 저작물 속성
- 1 차 저작물
- 공동저작자
- 1유형
- 수집연계 URL
- http://www.emuseum.go.kr
- 분류(장르)
- 사진
- 원문제공
-
원문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