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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상감국화문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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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청자상감국화문대접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4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청자대접중에서 원하는 문양을 음각(陰刻)한 뒤 거기에 태토와 색깔이 다른 백토(白土)‚ 자토(紫土)를 메우고 그 위에 청자유를 씌워 굽는 기법인 상감(象嵌)기법을 이용하여 만든 것. <발달과정/ 역사> 청자(靑磁)는 철분이 극소량 들어 있는 태토 위에 철분 1-3%의 장석유(長石釉)를 바르고 환원염으로 구워 유약 속의 철분이 청록색으로 변한 자기를 말한다. 대체로 환원이 불충분하거나‚ 또는 불순물이 함유되거나 해서 유색(釉色)이 황녹색이나 회녹색‚ 때로는 산화되어 황갈색을 띤 것도 청자로 부르고 있다. 중국 절강성 북부의 월주요(越州窯)에서는 한대부터 원시적인 청자가 만들어졌지만 5-6세기경부터는 차츰 발전하여 제작지도 화남·화북으로 퍼져나갔으며 당나라를 거쳐 송대에는 절정을 이루어 청자요가 중국 각지에 있었다. 특히 복건성‚ 절강성‚ 광동성의 해안지역에서 많은 요지가 발견되었고 청대의 경덕진요에서는 송·명대 청자의 모조품제작이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청자의 발생은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말부터 중국 월주요에서 만든 원시청자인 고월자(古越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는 학설과 10세기 후반에 고려의 중앙집권화 및 신지배층의 중국도자에 대한 수요에서 청자제작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좁고 낮은 굽은 굽을 갖고 있는 이 유물은 구연부(口緣部) 굽에 이르는 외측면선(?側面線)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대접의 외측면에는 아무런 문양이 없는 상태로 군데군데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으며‚ 유약이 뭉친 부분도 조금 보인다. 대접의 내면(內面)은 구연부 아래에 약 1cm 정도의 두께로 백상감초문대(白象嵌草文帶)를 돌렸으며‚ 그 아래에 원문(圓文)없이 커다란 백상감국화문을 세 곳에 장식하였는데 줄기와 잎 등을 시원시원하게 잘 표현하였다. 바닥중앙부에는 지름 2.5cm 정도의 굽흔적이 오목하게 들어가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대접의 내외면에는 약간 큰 편의 빙열(氷裂)이 덮여 있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개정용어집>>‚ 한국고고미술연구소‚ 198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박물관도록>>‚ 대전대학교박물관‚ 2000 <<숭실대학교박물관도록>>‚숭실대학교박물관‚ 2004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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