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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균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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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명균 간찰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4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이 간찰은 18줄의 초서체로 이명균의 편지글이다. 아들 혼례 후 사돈에게 보내는 인사편지이다. 그 내용은 "일찌기 태산과 북두칠성처럼 우러러 존경하였더니 이번에 사돈으로 맺어져서 내 자신을 돌아봄에 어리석고‚ 용렬한 작은 분수에 넘치며‚ 할 수 있는 능력의 단한것 입니다. 밤사이에 형제 분들의 기후가 계속 만중하시며 아래의 가솔과 모든 일이 고루 무사하고‚ 신부도 또한 무사합니까? 신부의 덕있는 모양과 정숙한 태도는 사실상 가문의 귀한 보배니 비로소 옛스러운 가문의 규범이 참된 것이 있음을 알겠습니다. 그러니 기쁘고 경사스러운 말을 어찌 다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간신히 집에 도착하여 피곤하여 활동을 못하겠습니다. 핍하고 물건이 귀할대 도리어 절실히 평안하기도 어려우니 이른바 이쪽은 예물에 답할 것이 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이와 같이 아무것도 없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저의 자식은 제대로 가르친 것이 없어서 하나도 사람다운 점이 없사오니 기회에 따라서 지도하여 주셔서 성취하는데 까지 이르게 하여 주신다면 감사를 무어라 드리겠습니까. 이것으로 우르러 바라는 바입니다. 갑오 3월 23일 이명균 재배" 이다. 이명균(1863철종 14-1923)은 독립운동가로 경북 김천 출신 이다. 1915년 편강렬과 함께 해인사를 방문한 테라우찌 총독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편강렬을 40일간 은신시켜 만주로 망명케 했다. 3.1운동 때 경상도의 만세 시위를 주도하고 1920년 신태식. 정순영과 함께 한국 독립 후원의 용단을 조직하여 재무총장으로 5차례에 걸쳐 임시정부에 10만원을 송금했다. 1922년 이 사건이 발각되어 모아 놓은 독립군 자금 8만 3천원을 빼앗기고 잡혔다가 이듬해 예심도중 병보석으로 죽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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