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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생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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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양선생년보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7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율곡 이이(栗谷 李? 1536-1584)와 우계 성혼(牛溪 成渾) 선생 연보. [인물] 율곡 이이(栗谷 李? 1536-1584)와 우계 성혼(牛溪 成渾) 선생 연보. 율곡은 조선조 학자·문신으로 아명은 현룡(見龍)‚ 자는 숙헌(叔?)‚ 호는 율곡(栗谷)·석담(石潭)·우재(愚齋)‚ 본관은 덕수(德水)‚ 찰방(察訪) 원수(元秀)의 아들로 어머니는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로 강릉(江陵) 출신이다. 어려서 어머니에게 학문을 배우고 명종 3년(1548) 13세로 진사 초시(進士初試)에 합격‚ 16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9세에 금강산에 입산‚ 불서(佛書)를 연구하다가 다시 유학(儒學)에 전심하여 23세 때 이황(李滉)을 찾아가 만났다. 명종 19년(1564) 생원시(生員試)·식년문과(式年文科)에 모두 장원‚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일컬어졌다. 조선 유학계에 이황(李滉)과 쌍벽을 이루는 학자로 기호학파(畿湖學?)를 형성했고‚ 장구(章句)의 분석적 해설보다 근본 원리를 자유롭게 종합적으로 통찰함을 학문을 연구하는 태도로 했으며‚ 이황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 대하여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근본사상으로 이통기국(理通氣局)을 주장‚ 이 사상의 차이가 당쟁과 관련되어 오랫동안 논쟁의 중점이 되었다. 학문을 민생 문제와 직결시켰고‚ 당쟁의 조정‚ 10만 군대의 양성(養成) 및 대동법(?同法)과 사창(社倉)의 실시에 노력하는 등 많은 활약을 하였다. 글씨에도 능하여 조자앙(趙子昻)의 체를 습득했으며‚ 그림에도 뛰어났다. 문묘(文廟)에 종사(從祀)‚ 선조의 묘정(廟廷)에 배향(配享)‚ 파주(坡州)의 자운서원(紫雲書院)‚ 강릉(江陵)의 송담서원(松潭書院)‚ 풍덕(豊德)의 귀암서원(龜巖書院)‚ 서흥(瑞興)의 화곡서원(花谷書院)‚ 함흥(咸興)의 운전서원(雲田書院). 황주(黃州)의 백록동서원(白鹿?書院) 등 전국 20여개 서원에 제향(祭享)‚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우계는 조선조 학자로 자는 호원(?原)‚ 호는 우계(牛溪)·묵암(墨庵)‚ 본관은 창령(昌寧)‚ 수침(守琛)의 아들이다. 17세 때 감시(監試) 초시(初試)에 합격했으나 신병으로 복시(覆試)를 못치르자 과거(科擧)를 단념‚ 백인걸(白仁傑) 문하에서 경학(經學) 연구에 정진했다. 일찍부터 이이(李?)와 교분이 두터웠으나 학설에 있어서는 이황(李滉)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지지‚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하는 이이와 1572년부터 6년간에 걸쳐 사단칠정(四端七?)에 대한 논쟁을 벌여 이이의 학설을 반박‚ 유학계(儒學界)의 큰 화제가 되었다. 이 때문에 이이의 문인인 조헌(趙憲)·한교(韓嶠)·황신(黃愼)·이귀(李貴)·정엽(鄭曄) 등이 그의 문인이 되었다. 글씨를 잘 썼다. 죽은 후 반대파들에 의해 한때 관작(官爵)을 추탈당했다가 인조 초에 복관(復官)‚ 좌우정에 추증(追贈)‚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되고‚ 여산(礪山)의 죽림서원(竹林書院)‚ 창령의 물계서원(勿溪書院)‚ 해주(涇州)의 소현서원(紹賢書院)‚ 함흥(咸興)의 운전서원(雲田書院)‚ 파주(坡州)의 파산서원(坡山書院)에 제향(祭享)‚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내용] 이 책의 서문은 현종 6년(1665)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썼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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