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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자(?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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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등자(?子)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28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삼국시대 말에 오를 때나 말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발을 걸쳤던 안정용구. 발걸이는 등자(등?子)라고도 함 <발달과정/역사> 우리나라에서 등자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잘 알 수 없지만‚ 246년 고구려가 중국의 위(魏)나라군과 싸울 때 5‚000의 철기를 동원하였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서 일찍부터 기병이 철갑옷으로 무장하였다고 전하고 있어‚ 적어도 3세기 무렵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용하였다고 믿어진다. 1994년 북한의 강원도 철령(鐵嶺)에서 나온 청동제 말(3세기 제작 추정)에는 재갈 등 마구류 일체와 함께 등자가 묘사되고 있다. 한편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서는‚ 4세기 중엽 이후의 고분(古墳)에서 출토되고 있고‚ 부산 복천동(福泉?) 48호분의 등자가 최고(最古)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무렵부터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인 마구류가 수용되었고‚ 5세기에 접어들면 전역으로 파급된다. 발걸이 외에도 말을 편하게 타기 위한 도구에는 언치(안장 아래 덮는 것)‚ 다래(흙튀김 방지)‚ 고들개(안장을 고정시키는 가죽끈) 등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승마자(乘馬者)는 등자에 발을 걸어 말등에 쉽게 올라탈 수 있었다. 일단 말등에 올라타면 승마자는 양발을 안장의 양쪽 하단에 가죽끈으로 매달린 등자에 끼워 승마의 안정을 꾀할 수 있었다. 또한 양발로 말의 배를 압박하거나 차서 달리는 속도를 통제할 수도 있었다. 특히 등자는 기병의 양발을 지지해 줌으로써 말 위에서 활을 쏘거나 칼을 휘두르는데 안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며‚ 돌진한 기병이 창을 적에게 내지를 때에 달려간 힘이 고스란히 창 끝에 실릴 수 있는 지지대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발걸이는 발을 딛는 윤부(輪部)와 윤부의 윗부분 병부(柄部)로 구성되는데‚ 병부 끝 부분의 구멍에서 나간 가죽끈으로 안장(鞍裝)에 연결된다. 재질에 따라 나무로 만들어 겉면에 금속판을 덧댄 것과 금속만으로 만든 것이 있다. 가야지역 출토유물로 보아 차차 철제발걸이로 바뀌어갔다고 보인다. 또 모양에 따라 윤부가 주머니모양으로 만들어져 승마자의 발을 감싸주게 된 호등(壺?)과‚ 단순한 윤부와 병부로만 구성된 윤등(輪?)으로 나뉘는데‚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은 윤등이었다. 윤부의 아래 부분에 말 탄 사람의 발바닥이 닿는 부분을 답수부(踏受部)라 하는데‚ 이것은 윤등에 해당하는 발걸이로 발바닥이 닿는 면적을 넓힘으로써 안정감을 주기 위해 답수부를 2가닥으로 만들었다. 마사박물관 소장품을 복제한 것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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