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홍서대

추천0 조회수 40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홍서대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홍서대(紅犀帶) 홍서대는 왕과 문무백관의 관복에 두르던 띠인 각대의 일종인데‚ 각대의 장식에 사용된 재료가 붉은색의 물소뿔이기에 홍서대라 합니다. 각대는 착용자의 신분과 계급에 따라 차별을 두었는데 이러한 제도는 신라시대부터 이미 정착되었고‚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더욱 발달되어 계급에 따라 장식이 다양해집니다. 조선말기의 각대를 보면 가죽바탕에 비단으로 싸고 그 위에 석줄이나 다섯줄의 금줄 혹은 검정줄을 그어 띠의 바닥을 만들고‚ 양 끝은 장방형의 장식과 걸이쇠를 붙여 앞 중심에 오도록 하였으며‚ 그 양 옆은 작은 장방형의 장식을 대고‚ 다시 그 양 옆은 심엽형의 장식을 간격을 두고 붙이고‚ 뒷면에는 장방형의 장식을 연결해 붙였습니다. 띠의 길이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가슴둘레보다 커서 보통 120㎝ 정도이며‚ 너비는 5㎝ 정도입니다. 각대는 관복의 겨드랑이 밑에 있는 고리에 끼워 앞가슴에 오도록 하고‚ 뒤는 허리에 내려오도록 착용하여 실용성보다는 장식적 구실을 하였습니다. 띠의 종류는 장식의 재료에 따라 옥대‚ 서대‚ 비취대‚ 수정대‚ 금대‚ 은대‚ 각대 등이 있습니다. 옥대는 고려시대 왕과 중신들이 착용했으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왕과 왕세자‚ 왕비만 착용했습니다. 서대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물소뿔로 만들었는데‚ 옥대 다음으로‚ 세자가 공복을 입을 때와 일품의 관원이 관복을 입을 때 착용하였습니다. 비취대는 왕세자가 두르던 띠이며‚ 수정대는 왕세손이 사용하는 띠였습니다. 이처럼 서대는‚ 임금 바로 다음의 계급이 사용하던 권위있는 각대였습니다. 특히 우리 삼척에 있는 홍서대는 왕권강화‚ 왕실의 절대권력을 추구했던 조선 태조 이성계의 하사품이라는데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이 홍서대는 삼척시 당저동의 삼척김씨 재사(齋舍) 경내 보대운한각(寶帶雲漢閣)에 보관되어 오다가 2004년 9월에 삼척시립박물관으로 이관하여 제1전시실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삼척의 홍서대는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업한 다음 해인 1393년 삼척이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의 외가가 있던 곳이며 선대(5대조부ㆍ모)묘인 준경묘.영경묘가 소재한 곳이라 하여 삼척군을 삼척부로 승격시키면서 그 기념으로 홍서대를 하사한 것인데‚ 부사의 책임 아래 대대로 군청에서 봉안 관리해 왔던 것입니다. 그 뒤 약 360년 간 봉안 관리가 소홀하였는데‚ 영조 29년(1753) 12월 6일 당시 부사 이협(李挾)이 부사구기를 수리하다가 보대 즉 홍서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때 마침 암행어사 이현중(李顯重)이 삼척에 왔다가 그것을 보고 그 사실을 임금께 고하게 되었으며‚ 영조임금은 즉시 홍서대를 가지고 올라오도록 명을 내립니다. 그리하여 ※교생 박태수(朴?守)가‚ 당초 홍서대를 받고 봉안해 오던 사람의 후손인 호장 김상구(金尙矩)와 같이 섣달 그믐날 대궐에 당도하니‚ 갑술년 설날 아침 영수각 전배시 왕이 친히 홍서대를 두르시고‚ ※전배를 드린 후 김상구를 입시하라고 명하여‚ 활기의 묘소와 옛터의 형편을 들으시고 감회가 깊어 하시더니‚ 특별히 ※조지서 ※별제(別提)를 제수하시고‚ 또 예조로 하여금 함을 만들어 봉안토록 했으며‚ 그 함에 어제 홍서대기를 써서 새기게 하여‚ 삼척부에서 봉안토록 했습니다. 그리하여 삼척부사 이협이 군청 뒤에 각을 짓고 봉안해 왔는데‚ 정조 18년(1794) 부사 윤속이 군청 서편에 옮겨짓고 단청하였으며‚ 헌종 3년(1837) 부사 이규헌이 보대운한각이라는 5자를 서액하여 걸어놓고 하마비도 세웠습니다. 그러다가 1875년 당저동의 현 위치로 옮겨 짓고 삼척김씨대종회에서 봉안 관리해 왔으며‚ 1979년 5월 30일 강원도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교생(校生) 향교나 서원의 심부름꾼 ※ 전배(展拜) [궁궐. 종묘. 문묘. 능침 등에] 참배함. 전알(展謁) ※ 조지서(造紙署) 종이 뜨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 별제(別提) 정6품 또는 종6품 관리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