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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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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저울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0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저울은 물체의 무게를 다는 데 쓰는 기구이다. 이 저울은 조선시대의 것으로 가느다란 나무 저울대에 쇠눈금이 박혀 있다. 그리고 손잡이와 거는 부분이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저울대의 길이는 39㎝이고 끈길이는 13㎝이다. 저울추의 지름은 10㎝인고 돌로 만들었다. 돌에 구멍을 뚫고 그 위에 천을 발랐다. 돌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정확한 무게를 달기에는 부적당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관에서 제작되어 사용되었다기보다는 민간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저울은 대저울의 형태이다. 대저울은 저울대에 눈금을 매기고 물체의 무게에 따라 추를 이리저리 움직여서 평행을 이루었을 때 무게를 알아내는 저울이다. 대저울은 가벼운 것에서 무거운 것까지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저울의 역사는 삼국사기 나 삼국유사 의 기록뿐만 아니라 삼국시대의 석제 용범이나‚ 신라시대의 석제추‚ 통일신라시대의 12지상 청동추가 출토된 점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중국과의 교역 때문에 중국의 저울을 받아들였다. 또한 충렬왕 2년에는 우리 나라의 저울제도를 원나라에 맞추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태종 10년에 사헌부에서 서울에서는 말과 섬을 검사할 때에 저울도 같이 바르게 하고‚ 지방에서는 감사가 경시서(京市署)에서 검사한 저울을 가지고 검사하도록 하였다. 세종 3년에는 공조에서 저울을 교정하여 만들고 경시서에 두고 판매하도록 하였다. 또한 경국대전 공전 경공장조에는 공조에 저울을 만드는 공인 2명이 배정되어 있다. 저울은 양제의 문란과 더불어 그 문란상이 지적되었다. 즉 저울질할 때 저울대를 숙이거나 쳐들게 하여서 양(兩)이 변하여 근이 되고 형이 변하여 석(石)이 되는 폐단이 있었다. 이에 숙종대에 사헌부에서 시장에서 쓰는 저울에 낙인하여 반포하게 하였다. 저울의 종류는 대저울‚ 맞저울‚ 앉은뱅이저울‚ 용수철저울‚ 약저울 등이 있다. 그 중 대저울은 또 소칭‚ 중칭‚ 대칭으로 분류되는 데 경국대전 에 소칭은 3근 혹은 1근‚ 중칭은 20근 혹은 7근‚ 대칭은 100근으로 규정하고 있다. 소칭은 주로 약재나 금·은 등의 무게를 다는데 사용한다. 중칭은 주로 곡물‚ 야채 등 생활용품을 측정하는데 사용한다. 그리고 대칭은 쌀가마‚ 보리가마‚ 돼지 등 주로 무거운 물건을 측정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대칭은 손으로 들 수 없기 때문에 보통 틀에 걸어서 사용한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 만기요람‚ 도량형과 국악논총-박흥수박사화갑기념논문집(박흥수‚ 박흥수박사화갑기념논문집간행회‚ 1980)‚ 한국의 도량형(국립민속박물관‚ 신유문화사‚ 1997)‚ 조선후기 도량형 문란의 원인 연구(하원호‚ 한국사연구 59‚ 1987) <사진자료> 한국의 도량형(국립민속박물관‚ 신유문화사‚ 1997) <유사관련용어> 형(衡)‚ 추‚ 칭‚ 대저울‚ 맞저울‚ 앉은뱅이저울‚ 용수철저울‚ 약저울‚ 소칭‚ 중칭‚ 대칭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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