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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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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윤치호간찰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윤치호의 간찰 <근묵(槿墨)>은 34책으로 이루어진 첩장본(帖裝本)으로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선생이 우리나라 선현들의 묵적 가운데 서간류의 소품을 수집하여 엮은 것이다. 수록된 작가는 고려 말의 정몽주(鄭?周)‚ 길재(吉再)‚ 조선초기의 정도전(鄭道傳)‚ 강회백(??伯)‚ 대한 제국기의 이도영(李道榮)에 이르기까지 약 1136명에 달한다. 연대는 대략 600여 년에 걸쳐 있다. 작가의 신분별로 보면 임금에서 사대부에 이르며‚ 직업별로 보면 관료‚ 학자‚ 승려 등이 총 망라되어 있다. 또한 서체별로 보면 행서가 595점‚ 초서가 468점으로 행초가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해서는 57점‚ 전예는 16점으로 전예해행초의 구색을 모두 갖추었다. 문장의 내용면은 서간이 720점‚ 시고가 353점‚ 제발 및 기타 잡문이 62점으로 내용면에서도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근묵에는 600년 간에 걸친 우리 선현들의 생활사를 볼수 있기에 옛 사람의 사생활의 실태는 이러한 서간첩(書簡帖)이 아니고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중요한 사회사의 자료가 된다. 서법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운필하여 바쁜 가운데 비필난초(飛筆亂草)로 휘두른 것으로 그 필치는 유려하고 창달하여 보는 사람들의 심목을 흔결(欣決)케 하는 감동을 지니고 있다. 아무런 제약과 의도적인 작태가 없는 서간의 서품은 그것이 글씨의 본바탕이며 작가의 개성을 그대로 살린 작품으로 근묵은 600년의 살아 있는 서예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서간형식의 변천과 서압(署押)의 양상을 연구할 수 있어‚ 역사‚ 민속‚ 사회사‚ 서법연구 등 여러 측면에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윤치호(尹致昊) 1865년(고종 2)-1946년 본관 해평(涇平). 호 좌옹(佐翁). 충남 아산(牙山) 출생. 일찍부터 개화운동에 투신‚ 1881년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을 따라 일본에 다녀온 뒤 미국에 건너가 신학문을 배웠다. 1895년 귀국‚ 총리대신 비서관을 거쳐 학부협판(學部協辦)이 되었으나‚ 춘생문(春生門)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하였다. 그 후 서재필(徐載弼)·이상재(李商在) 등과 독립협회를 조직하였으며‚ 1898년 독립신문사 제2대 사장‚ 함경도 덕원부윤(德源府尹)‚ 천안군수 등을 지냈다. 1906년 장지연(張志?) 등과 대한자강회(?韓自强會)를 조직‚ 회장이 되어 교육사업에 힘썼다. 1910년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을 조직한 후 대성학교(?成學校) 교장으로 있다가 11년 105인사건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일제강점기 말에 한때 변절‚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원 의원을 지냈으나‚ 8·15광복 후 친일파로 규탄받자 자결하였다. 저서에 《우스운 소리》 《영어문법첩경(捷徑)》 등이 있다. 伏詢比來 閒裏眼餐萬晏否 伏 且祝 生近以熱瀉叫苦 ?幸渾眷無羔耳 今月 舊曆十六日 我國紀元節也 此日卽我?祖登極之日耶 其日略史數語 詳敎 伏乞伏乞耳 ?在知己 玖以冒煩 愿諒若何建陽二年八月初三日 尹生致昊 再拜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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