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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도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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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문묘도판화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무묘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장수 관우(關羽)를 모신 사당으로 관왕모‚ 관제묘(關帝廟)·무묘(武廟)라고도 한다. 관우는 관성제군(關聖帝君)·관보살(關菩薩)이라고도 하며‚ 무운(武運)과 재운(財運)의 수호신으로서 한(漢)민족의 신앙의 대상이다. 당(唐)나라 중기부터 무신(武神)으로서 관제(官祭)의 하나가 되었다. 명(明)나라 영락제(永樂帝)가 타타르를 정벌하였을 때‚ 청(?)나라 강희제(康熙帝)가 타이완[臺灣]에 있던 명나라 유신(遺臣)의 폭동을 진압하려 하였을 때‚ 영검이 있었기 때문에 왕조의 존경과 숭상이 더욱 두터워졌고‚ 관우는 신성불가침의 우상이 되어 각지에 무묘를 세웠다. 비도(匪徒) 등 민간의 비밀결사도 이를 존경하고 믿었으며‚ 청나라 초기에는 명나라 부흥 운동의 우상이 되었다. 재신(財神)으로서 숭배된 것은 관우가 위(魏)나라의 조조(曹操)에게 잡혔을 때‚ 조조가 그에게 상마금(上馬金) 하마은(下馬銀) 등의 푸짐한 상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퇴하고 촉나라 유비(劉備)에게로 돌아갔다는 고사에 따른다. 도교에서는 관우를 유계(幽界)의 유력한 신으로 모신다. 한국에서는 1598년(선조 31) 경상북도 성주와 안동에 명나라 장군들이 세운 관왕묘가 남아 있으며‚ 1600년에 세운 동관왕묘(東關?廟)가 서울 동대문 밖에 남아 있다. 본 작품은 이러한 관우를 모신 묘인 무묘‚ 관왕묘‚ 관제묘라고 불리우는 묘를 묘사해 놓은 작품으로서 특히 판화로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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