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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동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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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탑동삼층석탑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석탑의 조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 중엽의 것으로 보이며‚ 전체적인 비례로 보아 원래 이층기단의 3층석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기단부의 이층 기단부와 1층의 탑신 및 1‚2‚3층의 옥개석 그리고 복발이 남아있다. 원래는 송학장(중구 송학동 구 시장관사)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66년 인천공보관으로 이전 복원하였다가 1990년 박물관 이전과 함께 이관된 것이다. 1916년 인천부의원이었던 일본인 고노(河野竹之助)가 충남 보령으로 부터 반입하여 정원석으로 사용하였다는 설도 전하지만 확실한 근거자료가 없어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석탑은 여러 석탑의 부재를 한데 모아서 복원한 것으로 추정되어 그 출토지를 밝히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석탑은 신라 석탑의 전형양식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대체로 기단과 탑신은 신라 석탑에 비하여 폭이 좁아지고 탑신은 층수가 많아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 안정감이 있다면 고려시대의 석탑은 늘씬한 감이 있다. 또 어떤 탑은 탑신 밑에 별도의 판석을 삽입하기도 하고‚ 어떤 탑은 기단 위아래로 연꽃무늬를 돌려 마치 불상대좌와 같은 모습을 이루기도 한다. 또 지붕은 두껍고 처마가 네 귀에서 위아래가 모두 곡면으로 들리며 일부의 탑에서는 기단도 단층으로 생략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고려시대의 석탑은 전성기 신라 석탑이 보여주는 당당한 느낌은 줄어들고 기단이 좁아 안정감이 적은 반면 탑신의 층수가 많아 하늘로 치솟는 느낌을 준다. 대표적인 석탑으로는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의 개성 남계원 칠층석탑과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그리고 경천사 십층석탑 등을 들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사찰의 조영과 불탑의 건립에 토착 세력의 참여도 높아져서 고려 사회의 새로운 성격이 부각되는 10세기 후반부터는 석탑에서도 새로운 조형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첫째로 고려시대 석탑은 지방적인 양식을 현저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를테면 영남 지방에서는 신라식의 석탑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반면‚ 옛 백제 지역에서는 백제식의 석탑이 일부 부활되고 있다. 또한 개성을 중심으로 한강 이북 지방에서는 다각다층석탑이 성행했다. 이러한 지방 양식의 석탑이 조성된 배경은 뚜렷이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각 지방에 남아 있던 과거의 명탑들이 지방 양식의 모델로 자리잡아 영향을 미치거나‚ 토착 세력의 부각에 따라 복고풍 석탑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면서 백제식의 석탑과 고구려식의 다각다층탑의 재현을 불러 일으켰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둘째로 다양한 갈래의 이형석탑이 고려시대에도 조성되는데 그 중에는로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이 탑은 고려 말기인 충목왕 4년 (1348년)에 세워진 것으로 평면이 사면돌출형인 기단을 3단으로 쌓고‚ 탑신은 3층까지는 사면돌출형을 유지하다가 4층부터는 사각형으로 올렸으며‚ 상륜부는 사면석주형으로 마감하고 있다. 백색 대리석을 재료로 하여 기단으로부터 탑의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온통 불보살‚ 신중‚ 운룡‚ 초화‚ 동물 등을 표면에 새겨 넣고 탑신에는 층마다 난간을 설치하였으며 지붕은 목조 건물의 온갖 부재를 세밀하고도 정확하게 표현하였다. 아예 탑 전체가 목조 건물을 방불케 하며 석탑이면서도 대작의 세련되고 화려한 석조 공예품을 대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인데‚ 이 석탑 또한 고려시대 석탑 장엄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본 유물은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 중엽의 것으로 추측된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현재는 기단부의 상대중석‚ 상대갑석 및 1층의 탑신과 1‚ 2‚ 3층의 옥개석‚ 복발이 남아있는데 원래는 이층기단의 3층이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신라의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의 전통을 이은 석탑‚ 새로운 소재를 사용한 석탑‚ 탑신의 층층 마다 괴임돌을 삽입한 석탑‚ 탑신 전체에 불보살상이나 여러 가지 무늬를 새긴 석탑‚ 상륜부가 특이한 조형을 보여주는 석탑 등이 주목된다. 그리고 특히 고려 말기에 들어서는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 경복궁의 경천사 십층석탑 등의 경우처럼 상륜부가 이국적인 스타일의 석탑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화순 운주사에는 한 사찰에 수십 기의 석탑이 조성되는 가운데 생소한 무늬와 역시 생소한 탑신부를 쌓아 올린 탑들도 세워져 매우 특수한 예를 보이고 있다. 고려 석탑의 또 하나의 특수한 예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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