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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유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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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시유접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본 유물은 일제 강점기때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일본의 도자기로‚ 시기는 20세기 초이다. 먼저 대략적인 일본의 도자기 역사를 살펴보면‚ 일본의 도자기는 죠몽 시대[繩文時代]에 흑색태토에 노끈 자국을 압인한 장식도자기인 1만 2천여년으로 추정되는 죠몽 토기가 전국에서 만들어졌다. 다음으로 야요이[彌生] 토기가 전국적으로 제작되었는데 죠몽 시대보다 좀더 정제되고 장식은 간단해졌으며 형태는 당시 한국 도자기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아스카 시대[飛鳥時代]에는 물레를 사용했고 초보적인 가마를 사용하여 전대보다 고화도로 소성했다. 이와 같은 제작은 나라 시대[?良時代:710-794]와 헤이안 시대[平安時代:794-1185]에 걸쳐 한국과 중국의 현저한 영향 아래 진행되었다.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1170-1340]와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1192-1573]에는 중국에서 도예기술을 배워와서 세토[瀨戶]에서 많은 도자기를 생산하여 찻잔 접시 항아리 등 일상용기와 송나라의 천목을 모방한 다완을 만들었다. 고일본의 도예중심지는 세토 비젠[備前] 단파[丹波] 시가라키[信樂] 에치젠[越前] 등이다. 모모야마 시대[桃山時代:1573-1600]에는 내전으로 도자제작이 쇠퇴하였지만‚ 시노도자‚ 키제토도자‚ 오리베도자 등의 독특한 도자기가 만들어지고‚ 1590년대 조선침입 때 조선의 도공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면서 일본 도예는 도기(陶器)에서 실제적인 자기(磁器)를 만들게 되는 완전한 전환을 하게 되었다. 에도 시대[江戶時代:1603-1867]에는 잡혀온 조선이 도공 이삼평(李參平)이 이스미 산[泉山]에서 자기질 점토를 발견하고 본격적인 자기를 계속 제작하던 중 중국 경덕진요에서 중국도예의 비법이 들어와 한층 양질의 자기를 만들게 되었다. 아리타의 초기 자기는 청화백자로서 형태와 문양이 조선시대의 것처럼 단순하고 그 질이 우수하여 네덜란드인에 의해 유럽으로 수출되었다. 본 유물은 오리베(織部) 접시로‚ 오리베도자란 일본의 모모야마시대로부터 에도초기(江戶時代初期)에 걸쳐 센노리큐(千利休)에 이은 ?茶人이며 또한 武將이기도 하였던 후루타오리베쇼우시게노리(古田織部正重然)가 스스로의 취향(또는 미학)을 기준 규범으로 하여 미노지역의 도공들에게 지도하여 만들게 하였다고 하는 일련의 의장‚ 유사형식의 도자기를 일컫는다. 이는 대체로 녹유와 철유를 조합하며‚ 구도는 다소 무질서해 보이고‚ 문양은 화려하고 개성 넘치는 의장을 특징으로 하며‚ 전체적으로 자유롭고 개성넘치며 활달한 느낌을 준다. 본 유물도 이러한 특징을 잘 보이고 있다. 오리베도자의 종류는 우리의 청자‚ 백자 등과 같이 도자기의 기법이나 확연히 차이가 나는 태토와 소성방식 등으로 특징된다기 보다 의장형식의 차이로 여러 종류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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