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묵란도

추천0 조회수 114 다운로드 수 2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묵란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소치(小癡) 허련(許鍊;1809-1892)은 조선후기의 선비화가로‚ 말년에 중국 당대의 남종화와 수묵산수화의 효시인 왕유(?維)의 이름을 따서 `허유(許維)`로 개명하였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均)의 후손으로 초년에는 해남의 윤선도 고택에서 윤두서(尹斗緖)의 작품을 통해 전통화풍을 익혔으며‚ 대흥사 초의(草衣)의 소개로 상경하여 김정희의 문하에서 본격적인 서화를 배웠다. 그는 남종화를 기초로 독특한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구축하여 김정희의 문하에서 남종화풍을 토착화시킨 화가로 지목된다. 한국미술사상 회화가 가장 발전하였던 때는 조선왕조라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회화는 고려회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송‚ 원‚ 명‚ 청의 중국회화를 선별적으로 수용·소화해서 구도‚ 공간처리‚ 필묵법‚ 준법(峻法)‚ 수지법(樹枝法) 등에서 독자적인 양식을 형성하였다. 조선시대 회화는 많은 변화를 거듭하였는데‚ 양식적 변천에 따라 초기(1392-약 1550)‚ 중기(약1550-약 1700)‚ 후기(약1700-약1850)‚ 말기(약1850-1910)의 네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초기에는 북송대(北宋代)의 곽희파(郭熙?) 화풍을 토대로 발전된 안견파(安堅?) 화풍이 가장 유력하였으며‚ 이 밖에 강희안(?希顔)을 중심으로 명대(明代)의 절파(??) 화풍과‚ 이상좌(李上佐)를 중심으로 남송대(南宋代)의 마·하파(馬??) 화풍‚ 그리고 최숙창(崔淡昌) 등을 중심으로 미법산수(米法山水) 화풍 등이 화단의 일각에서 그려졌다. 중기에는 안견파 화풍을 비롯한 초기의 화풍들이 계승 지속되었으나 그 중에서도 절파계의 화풍이 가장 크게 유행하였으며‚ 영모와 화조화 부분에서 김식(金埴)·조속(趙?)‚ 묵죽·묵매·묵포도(墨葡萄) 에서 이정(李霆)·어몽룡(魚?龍)·황집중(黃執中)·허목(許穆) 등의 문인화가들이 배출되었다. 후기에는 중기 이래로 유행하였던 절파계 화풍이 쇠퇴하고 그 대신 남종문인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였으며‚ 한국의 산천을 독특한 화풍으로 표현하는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가 정선(鄭敾)을 중심으로 크게 발달하였다. 그리고 김홍도(金弘道)와 신윤복(申潤福)등에 의해 풍속화가 그려졌으며‚ 청나라로부터 서양화법(西?畵法)이 전래되어 미약하게나마 수용되기 시작하였다. 말기에는 진경산수와 풍속화의 전통이 쇠퇴하고 김정희(金正喜)를 중심으로 남종문인화가 더욱 큰 세력을 굳혔으며‚ 이와 함께 윤제홍(尹濟弘)·김수철(金秀哲)을 비롯한 개성이 강한 화가들이 나타나 참신하고도 이색적인 화풍을 창조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일제시대의 전통문화 말살정책과 서양화의 대두 등으로 조선시대 한국화의 전통은 오원(쌍벽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본 작품은 바로 장승업과 함께 근대 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소치(小癡) 허련(許鍊: 1809-1893)이 그린 묵란도로 시기는 조선시대 19세기이다. 허련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후손으로 초년에는 해남의 윤서도 고택에서 윤두서의 작품을 통해서 전통화풍을 익혔으며‚ 대흥사 초의선사의 소개로 상경하여 추사 김정희에게서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받아 남종화의 대가로 성장했다. 왕실의 그림을 그리고 여러 관직을 맡기도 했으나‚ 김정희가 세상을 뜨자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진도에 내려와 그림에 몰두했다. 1892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까지 천부적인 재질과 강한 의지로 시(詩)·서(書)·화(畵)에 능하였던 그는 헌종의 총애를 받아 헌종이 쓰는 벼루를 사용하였으며‚ 흥선대원군‚ 민영익 등을 비롯한 권문세가들과 어울리면서 시‚서‚화를 하고‚ 왕실 소장의 고서화를 평하기도 했다. 그는 산수는 물론 송‚ 죽‚ 매‚ 란 등 다양한 주제를 그렸는데‚ 다소 거친듯 하면서도 훌륭한 남종문인화를 남겼다. 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을 고비로 퇴조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장승업의 영향을 받은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과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晉: 1853-1920)을 비롯한 근대 초기의 작가들이 서화협회를 조직하여 후진 양성에 힘쓰고‚ 그들의 문하에서 배출되어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한 이상범(李象範)·노수현(盧壽鉉)·변관식(卞寬植)·김은호(金殷鎬)등에 의해 현대 화단에까지 맥락이 이어질 수 있었다. 한편‚ 이러한 장승업의 일파와 더불어 소치(小癡) 허련도 호남화단을 중심으로 하여 아들인 미산(米山) 허형(許瀅)을 비롯한 후손들과 그들의 제자들로 화풍이 전수되어 일문을 이루게 되었다. 장승업과 허련은 현대화단에까지 후진들에 의하여 그 계보가 이어지고 있어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