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유대파수부배

추천0 조회수 58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유대파수부배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고온으로 구워진 경질토기로 흡수성이 거의 없고 표면에 유약을 바르지 않았으나 자연유가 부분적으로 덮여지는 경우도 있다. 기형은 기본적으로 굽다리접시와 목긴항아리가 있으며 특색 있는 기형에는 동물형토기와 토우가 있다. 신라·가야토기에 나타나는 무늬는 다양하고 세련된 침선문이 위주가 되어 있다. 고식도질토기라고 부르는 초기의 토기에는 무늬가 잘 베풀어지지 않으나 신라토기와 가야토기로 분화하는 시점인 4세기 후반에서부터 뚜껑과 몸통에 각종의 무늬를 시문하게 된다. 이 때의 토기 무늬는 다양한 치구(齒具)를 이용한 기하학적인 무늬와 선각화문(線刻畵文)으로 나눌 수 있다. 신라토기의 무늬를 시기별로 정리하면 밀집파상문과 점열문이 처음에 등장하고 차츰 집선문‚ 원권문‚ 삼각거치문‚ 침엽문(어골문) 등의 기하학적인 무늬가 성행한다. 그리고 6세기 무렵에는 삼각형을 연결한 거치문과 그 아래 반원문을 연접한 거치반원문이 유행하면서 토기에의 시문범위가 좁아지는 경향이 있다. 한편 6세기 후반부터 통일신라에 이르는 소위 통일양식 토기기의 토기에는 침선문 위주의 무늬가 사라지고 대신에 갖가지 무늬가 새겨진 도장을 이용하여 찍어낸 인화문이 유행하게 된다. 토기제작기술의 발달로 연질토기에서 도제‚ 즉 경질토기로 발전하자 잔 형태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손잡이가 달린 것이다. 잔 자체의 무게와 액체를 담았을 때의 무게 때문에 손잡이가 부착되었으리라고 추정되는데 머그형잔‚ 주머니형잔‚ 굽다리가 달린 잔 등 형태가 다양해진 동시에 용량도 커졌다. (높이가 30cm 넘는 것도 있음) 청동기 시대의 연질토기 잔에 손잡이가 부착된 예가 있기는 하지만 잔의 용량이 커지면서 손잡이가 달린 듯 하다. 손잡이의 형태도 다양하여 손잡이 윗부분이 짐승 모양을 한 것이 있는가 하면(단순한 멋의 추구가 아니라 재액의 의미가 있는 듯 함) 양손잡이잔(머그형)도 있다. 몸통이 동그란 복주머니 형은 손잡이의 모양이 비교적 단순한 바‚ 고리형이 있는가 하면 소형은 납작한 형태도 있다. 몸통의 모양 역시 머그형과 굽다리형에 비하여 단순한 편이어서 더운 액상의 물질을 담았겠지만 대중용이 아닌가 추측된다. 아래위가 볼록하고 허리가 잘록한 호리병은 무서운 전염병(마마)을 옮기는 마귀가 호리병안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하여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마 예방책으로 호리병 혹은 호리병과 유사한 모양을 만들어 지녔다. 손잡이잔 중에서도 호리병과 유사한 형태가 있다. 본 유물은 구연은 직립해 있으며 동최대경인 동중위로 급격히 벌어졌다가 다시 대칭적으로 오므라들어 안정적인 동체를 이루고 있다. 동최대경인 동중위와 어깨부분에서 돌대가 지나가고 있으며‚ 어깨부분의 돌대가 지나가는 위치로부터 아래로‚ 동체에 비해 작은 손잡이가 달려 있다. 대각은 나팔형으로 벌어졌으며‚ 2단으로 침선에 의해 분할되어 교차투공되고 있다. 표면에는 부분적으로 소성시에 생성된 자연유와 잡물이 부착되어 있다. 회청색 경질토기로 소성도가 높고 정선된 태토이다. 대각의 일부가 파손되어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