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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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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난초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1820-1898)은 고종의 아버지로 쇄국정책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지만‚ 서화에 능했으며 특히 난초를 잘 그렸다 한다. 난초그림들 가운데서 대원군의 진품을 식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당시 소위 "귀인의 난초"라 하여 그의 난초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말년에 일본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많이 요구해서 일일이 응할 수 가 없었기 때문에 사랑방에 대필할 사람을 두고서 대신 그리게 하였다. 그의 대필자 중 유명한 사람이 소호 김응원이다. 난초는 옛부터 깊은 골짜기에서 홀로 고고하게 향기를 품고 있는 모습이 세속의 이욕과 공명에 초연하였던 고결한 선비의 마음과 같다고 하여 `유곡가인(幽谷佳人)`‚ `유인(幽人)` 또는 `향조(香組)`‚ `군자향(君子香)` 등으로 불리었다. 그리고 정절과 충성심의 상징으로 찬미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난초의 상징성은 초(楚)나라의 시인이며 충신이었던 굴원(屈原)이 난의 고결한 자태를 거울로 삼았다고 읊었듯이 이미 오래 전부터 형성되었다. 그러나 난초가 그림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북송(北宋)때부터였으며‚ 처음에는 화조화의 일부분으로 그려지다가 미불(米低: 1051-1107)에 의해 수묵법에 의한 독립된 화제로 다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화조화의 배경에서 하나의 화제로 독립된 묵란을 보다 사의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남송(南宋)의 정사(鄭?)였고‚ 원나라 때는 송설체로 유명한 조맹부와 설창 등에 의해 산뜻하고 단아한 모습의 묵란이 유행되기도 하였으며‚ 특히 조맹부의 부인인 관도승(管道昇)의 맑고 수려한 난화는 마수정(馬守貞)‚ 표표(表表)등의 여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쳐 이들을 `규수전신파(閨秀傳神?)`라 부르기도 한다. 문인화가 널리 보편화되었던 명대(明代)에 와서 묵란은 더욱 크게 성행하였고‚ 이러한 전통이 청대(靑代)에도 계속 이어져 보다 다양하고 개성이 넘치는 화풍으로 발전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묵란은 고려 말기에 전래되어 조선 초기부터 그려지다 추사 김정희에 이르러 대성되었고 그 전통이 근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묵란은 그 은은한 먹향기와 수려한 곡선미와 청초한 분위기를 통해 고결한 이념미가 역대의 뛰어난 문인화가들에 의해 계승‚ 발전되어 오면서 사군자 그림과 문인화의 발달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특히 난초의 생김새는 한자의 서체와 닮은 점이 많은 데‚ 난엽을 그리는 것을 잎을 그린다고 하지 않고 앞을 삐친다고 하는 것도 글씨에서 삐치는 법을 쓰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묵란화가 문인묵객들이 즐겨 찾던 주제의 하나로서 시 ‚서‚ 화에 능한 삼절(三絶쇄국정책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지만‚ 서화에 능했으며‚ 특히 난초를 잘 그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로부터 “해동의 난 그림은 閤下(합하·대원군을 높여 부르던 말)가 최고다. 내가 난초만은 대원군에게 양보해야 한다” 는 평가를 얻었을 정도이다. 대원군은 여백을 살리고 화면 한쪽에 한떨기 춘란(春蘭)을 즐겨 그렸고‚ 난은 섬세하고 동적이며 칼날처럼 예리한데‚ 특히 줄기가 가늘고 날카롭다. 뿌리에서 굵고 힘차게 시작하지만 갑자기 가늘어지고 끝부분에 이르면 길고 예리하게 쭉 뻗어나간다. 또 중간중간 각을 이루며 반전을 거듭한다. 본 작품도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대원군 난초는 그의 생전부터 가짜가 많았다. 당시 그의 난초를 원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대원군은 사랑방에 사람을 앉혀놓고 대신 그리게 한 다음 자신은 거기에 이름을 쓰고 도장만 찍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특히 서예에 뛰어난 사람들에 의해 주로 그려졌던 사실로도 알 수 있다. 난초의 종류는 상당히 많지만 묵란화에서는 주로 춘란(春蘭)과 건란(建蘭)을 다룬다. 춘란은 잎의 길이가 각각 달라서 길고 짧으며 한 줄기에 한 송이의 꽃이 피는 것으로 청의 정판교(鄭板橋)와 조선 말기의 김정희‚ 대원군 이하응‚ 김응원 등이 잘 그렸다. 건란은 잎이 넓적하고 뻣뻣하며 곧게 올라가는데 한 줄기에 아홉 송이의 꽃이 핀다. 복건(福建) 지방이 명산지인 이 난은 청의 오창석(吳昌碩)과 조선 말기의 민영익(閔泳翊)이 특히 잘 그렸다 본 유물은 흥선대원군 석파(石坡) 이하응(李昰應)이 그린 묵란도로‚ 시기는 조선시대 19세기이다. 흥선대원군은 고종의 아버지라는 것과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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