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연화문수막새

추천0 조회수 28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연화문수막새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연화문은 불교에서 대자대비(?慈??)의 상징으로 조형화되었다. 그러나 연화문이 장식문양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고대 이집트의 로터스 장식법에서부터 라고 보여지며‚ 그 원동력은 태양숭배사상에 기인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일본의 막새기와에 대부분 연화문이 장식된 것은 고대 인도에서의 전법륜(轉法輪)에서 유래된 것이라 보여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후 불교가 전래된 4세기 후반부터 연꽃무늬가 장식된 수막새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수막새에 장식된 문양은 구름‚ 연꽃‚ 보상화‚ 인동‚ 연화인동‚ 연화귀면‚ 귀면‚ 중권‚ 와선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연꽃무늬가 주체적이며 형식적인 변화도 가장 풍부하다. 연꽃무늬는 단판‚ 세판‚ 중판‚ 혼판 등 여러양식으로 변화되고 있어서 그 의장의 다양함을 살필 수 있다. 고구려 초기의 연꽃무늬 수막새는 막새면을 선각으로 6내지 8구획으로 나누어 연꽃임을 각각 장식하고 자방에는 반구형의 돌기를 배치한 단판 양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고구려기와 중 집안에서 발견되는 4세기의 와당은 환원염의 회색계통으로 대개가 수막새로 지름이 크고 주연부가 높이 돌출되었으며 무늬로는 연봉오리가 주류를 이룬다. 고구려 와당형식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것을 따라 와당면을 6칸 혹은 8칸으로 구획하여 무늬를 배치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수막새는 4세기 후반부터 5세기 전반까지 크게 유행하는 고구려 독자적인 막새형이라고 할 수 있고 평양도읍기까지 그 형식이 계승되고 있다. 중국의 와당에 비하여 문양면의 그 구획하는 돌기대가 훨씬 강하고 연꽃의 양감이 두드러져서 고구려 특유의 웅혼한 느낌이 있다. 평양으로 천도한 후 5세기에는 기와의 색조가 적색 또는 적갈색으로 변화하며‚ 주연부가 낮아지고 크기도 집안것보다 작아져서 일반적 크기가 20㎝내외가 된다. 또한 구획선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양감이 강한 연봉오리들을 배치하고 그사이 삼각추의 사잇잎을 배치하는 혁신적인 양식이 출현한다. 그러한 연봉오리를 중심으로 인동문과 결합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아름다운 기하학적 무늬와 결합하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연봉오리가 연판으로 변하며 자엽의 형태가 그 연원은 알 수 없지만 처음 나타난다. 그리고 처음으로 암막새기와에 인동당초문을 음각한 것이 출현한다. 막새무늬의 양감있는 연봉오리의 배치와 다양한 무늬의 출현은 그 이후 전개되는 한국와당무늬의 원형을 이룬다. 놀랄만큼 생명력이 폭발할 것 같은 양감과 무한히 뻗어나갈 것 같은 추각선은 상반되는 조형요소이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그 당시 고구려의 패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본 유물은 적색연질계통으로 중앙에 자방을 위치하고‚ 4개의 연봉오리를 배치한 연화문수막새이다. 자방은 주문과 그 외부 2개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봉오리는 중앙에 능선이 돌기되어 두드러져 있고 가장자리를 돌출된 선으로 처리하였다. 연봉오리의 크기는 비교적 가는 편이며 연봉오리의 사이를 연봉오리보다 더 큰 문양으로 채워넣었다. 그 문양은 낙랑기와에서 자주 보이는 궐수문이 기하학적으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연봉오리의 끝에는 양쪽에 짧은 선문이 놓여있다. 문양부를 돌출된 선이 감싸고 있으며 주연부와는 홈이 없이 이어지고 있다. 주연부의 폭과 깊이는 크거나 높지 않은 편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