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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필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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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항필서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개설> 서간은 일반 글과는 달리 말 대신 쓰는 글로 수신인이 있고 수신인과의 관계에 따라 적절한 예법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서간문이라는 형식이 생겨났다. 발신인(發信人)‚ 수신인(受信人)‚ 용건(用件)의 구성요소를 가지며‚ 이두로는 고목(告目)‚ 기별이라고 하고‚ 조선시대 이전부터는 우무‚ 유무‚ 글월이라 하였으며‚ 조선 후기에 와서 편지라는 말이 쓰였다. 순한문이나 이두문을 섞어 쓰는 한문서간과 순한글이나 한자를 섞어서 쓰는 언간(諺簡)이 있으며‚ 한글편지는 내간(內簡)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한문서간에는 수필과 평론의 구실을 하는 문학작품인 것도 있어 한묵(翰墨)이라는 명칭도 생겼다. 내용에 따라 문안(問安)‚ 평신(平信)‚ 하장(賀狀)‚ 위장(慰狀) 등으로‚ 용도에 따라 실용서간과 문예서간으로 나뉜다. 현대의 편지글에는 한문서간과 일본서간이 스며 있다. <작가> 이항(李? 1499~1576)의 자는 항지(?之)‚ 호는 일재(一齋)‚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일찍이 무예를 익히다가 30세에 이르러 학문을 시작‚ 박영(朴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후 태인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지으면서 성리학에 전념‚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발전시킴으로써 중기의 대학자가 되었다. 당시의 학자 백인걸(白仁傑)은 이항의 학문이 조식(曺植)에게 비길만하다고 칭찬하였다. 저서로는 "일재집(一齋集)"이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글은 명경행수(明經行修)하는 선비로 추천되어 임천군수에 봉직하기 전 해인 1565(명종20)년 6월 6일에 형님에게 보낸 편지이다. 소식을 듣고 골몰한 나머지 병이 들어 아이들이라도 보내 찾아가 뵈려했지만 아직 못하고 있다며 민망함을 표한후 간단한 안부를 물었다. 이어 최근에 조카를 만나 자세한 얘기 들었으며‚ 고달픈 일이 많아 우선 예측은 못하지만 심부름꾼이라도 보내서 문후를 드리겠다고 전하며‚ 자신은 딸아이의 묵은 병으로 늘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정을 적었다. 轉聞 華?由還 而汨沒病憂 未謀進敍 一?探候 亦此稽逋 ?嘆之餘 仰鬱良渙 卽日?炎蒸人 伏?起居勝相 仰慰且溯 不任區區 頃對族侄 細聞陵所靜閑 ?痘快廓 爲從者渙賀萬萬 還朝果在何間 未前丕擬一進 而苦太纏? ?未預卜日期 先此替?以候耳 ??宿症 近無更肆之苦耶 每每貽憂心切不安 餘萬適擾忙不宣 伏?兄下照 謹候上狀 乙丑六月六日 弟 ? 頓首 <기타참조> "편지-조선시대 사대부의 일상"‚ 순천대박물관‚ 2003. <참고문헌> "편지-조선시대 사대부의 일상"‚ 순천대박물관‚ 2003. "한국인물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한국민족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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