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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승필 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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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건승필 서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작가> 이건승(李建昇1858∼1924)은 조선 말기의 학자·문인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보경(保卿)‚ 호는 경재(耕齋)이다. 영재(寧齋) 이건창(李建昌)의 동생이며‚ 난곡(蘭谷) 이건방(李建芳)의 재종형이다. 이건승은 매천(梅泉) 황현(黃?)과 깊이 교유하였다. 이건방과 함께 담헌(饋園) 정인보(鄭寅普)의 스승으로서 양명학적 사상을 그에게 전수하였다. 을사조약이 강압적으로 체결되자 홍승헌(?承憲)·정원하(鄭元?)와 함께 자결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06년에 강화도 사기리(沙磯里)에 계명의숙(啓明義塾)을 설립하여 교육구국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정원하(鄭元?)의 뒤를 따라 만주의 회인현(懷仁縣)으로 망명하였다. 문집으로는 필사본 ≪해경당수초 涇耕堂收草≫가 전한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건승(李建昇)이 전남 구례군 광의면 월곡리(求禮郡 光義面 月谷里)에 살던 황원(黃瑗)에게 보낸 서간이다. 그는 지난겨울에 보내준 차에 대해 우선 감사를 드린 뒤 집에서 한가로이 아이들을 가르치며 농사짓는 일이 어떤지에 대해 물었다. 또 금년에 냉해로 흉년이 들었으며 수해로 인해 수전(水田)이 모두 매몰되어 가을 수확이 전에 비해 1/3 밖에 되지 않아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편지 봉투에는 이 편지를 서울 돈의동(敦義?) 75번지에 머물던 이범하(李範?)가 보낸 것으로 적혀 있다. 이범하는 이건승의 또 다른 이름으로 추정된다. <기타참조> "강운 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참고문헌> "강운 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디지털한국민족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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