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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원필 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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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황원필 서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개설> 서간은 일반 글과는 달리 말 대신 쓰는 글로 수신인이 있고 수신인과의 관계에 따라 적절한 예법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서간문이라는 형식이 생겨났다. 발신인(發信人)‚ 수신인(受信人)‚ 용건(用件)의 구성요소를 가지며‚ 이두로는 고목(告目)‚ 기별이라고 하고‚ 조선시대 이전부터는 우무‚ 유무‚ 글월이라 하였으며‚ 조선 후기에 와서 편지라는 말이 쓰였다. 순한문이나 이두문을 섞어 쓰는 한문서간과 순한글이나 한자를 섞어서 쓰는 언간(諺簡)이 있으며‚ 한글편지는 내간(內簡)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한문서간에는 수필과 평론의 구실을 하는 문학작품인 것도 있어 한묵(翰墨)이라는 명칭도 생겼다. 내용에 따라 문안(問安)‚ 평신(平信)‚ 하장(賀狀)‚ 위장(慰狀) 등으로‚ 용도에 따라 실용서간과 문예서간으로 나뉜다. 현대의 편지글에는 한문서간과 일본서간이 스며 있다. <작가> 황원(黃瑗 1870-1944)은 매천 황현의 동생으로‚ 자는 계방(季方)‚ 호는 석전(石田)‚ 강호여인(江湖旅人)이다. "매천집"간행을 주도했으며‚ "가락국사"를 비롯한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일제의 탄압이 극심했던 1944년에 자결‚ 순국하였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서간은 황원이 왕수환에게 보낸 것이다. 이삭을 주워 낮에 돌아오니 차동(車?)의 심부름꾼이 물고기를 지고 문을 들어오므로 형의 객지 안부를 물었더니‚ 쾌활한 것이 항우(項羽)가 장한(章邯)을 격파한 것보다 더 낫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금년에 무슨 운명이 이렇게 박합니까. 선형을 지하에 잃고 또 형을 백리 밖에 생이별하여 졸지에 이렇게 적막하게 되어 사람이 미칠 지경인데 요즈음 매양 지천(芝川) 집에 가면 더불어 말할 사람이 없고 다만 형의 종항(從行)들과 함께 날을 지내고 돌아오니‚ 천하에 지극히 궁한 자가 나같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선비가 한 세상에 태어나서 극락처는 지기(知己)인데‚ 문득 두 분을 잃었으니 이 무슨 운명입니까. 일전에 창강 편지와 사원(士元)의 편지를 받았는데 모두 평안하다 하며‚ 창강은 부고를 받고 곧 글을 부쳤기 때문에 글이 짧아 긴 이야기는 없었으며‚ 만사(挽詞)도 또한 사절(四絶)을 속초(速草)하여 대개 그 생각한 바를 기술한 것 뿐입니다. 글 가운데 또 말하기를‚ 가까운 시일에 전(傳)을 지어 사기(史記) 중에 ?고‚ 또 큰 만사(挽詞)를 지어 보낸다고 하셨으며 여름에 지었던 선친 묘지명과 저의 당기 일편(堂記一篇)을 보내왔으나 형님은 저승 사람이 되었으니 누가 그 잘되고 못됨을 능히 평할 것이며‚ 영전에서 읽으니 또한 적적하여 참으로 돌아가신속하여 백리 밖에 스승을 찾는 효과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이에 보내는 묘지(墓誌)는 한 번 보신 후 석현(石峴) 송씨 어른댁으로 전해 주십시오. 이 어른은 선친의 벗으로 우리집 일에 가장 관심이 많으신 분입니다. 하늘을 우러러보고 따을 굽어보며 옛을 생각하면 반드시 전세(前世)의 생각이 날 것입니다. 바빠서 편지를 겸하여 보내지 못했으니 형께서 글을 지어 같이 부쳐 주시고‚ 또한 나의 뜻이 이같음을 보여 주시오. 나머지는 갖추지 못합니다. 경술년(1910) 9월 21일 기복제 황원 배상 <기타참조> "국역 황매천 및 관련인사 문묵췌편" 상‚ 미래문화사‚ 1985. <참고문헌> "국역 황매천 및 관련인사 문묵췌편" 상‚ 미래문화사‚ 198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전싱문화연구원‚ 1992. 줄을 알겠습니다. 어느 때에 올라오시겠습니까. 장사(葬事)는 내달에 하겠지만 아직 택일(擇日)을 아니하였습니다. 최동식(崔東植)씨는 우편으로 만사(挽詞)를 부쳐 왔는데 시(詩)에 이르기를‚ 진(秦)나라가 황제된 그날 선생이 죽었으니 비로소 선생이 천하의 선비인 줄 알겠구나. 또 이르기를‚ 해내(涇內)가 이제부턴 도리어 적막하리니 시도 없고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어제 오후에 계씨(季氏)를 잠시 노상에서 뜻밖에 만났습니다. 김출동(金出童) 모자(母子)는 요사이 다 무고합니까. 이 아이는 한갓 선형이 잊지 못할 뿐 아니라‚ 인정상으로도 월곡아이와 더불어 동학(同學)하여야 할 것인데 이곳에는 배울 데가 없어 보내지 못하였고‚ 또 형이 이곳에 머물러 있지 않아 보내도 효력이 없으니 특별히 단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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