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무이도가8폭병풍

추천0 조회수 44 다운로드 수 0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무이도가8폭병풍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1-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작가> 정로(鄭魯‚1751-1811)는 자(字)가 공면(公勉)‚ 호는 창파(蒼坡)‚ 본관은 청주(?州)이며‚ 한강 정구(寒岡 鄭逑‚ 1543-1620)의 후손이다. 아들 정시(鄭蓍)가 가산군수(嘉山郡守)로 재직했을 때 그곳에 머물던 중 1811년 홍경래(?景來)의 반란이 일어나 여러 고을이 점령되고 반군이 가산에도 몰려들자 아들의 피신 권유에도 떠나지 않고 관군과 함께 싸우다 살해되었다.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가산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시호(諡號)는 충경(忠景)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8곡병풍의 내용은 송나라 유학자 주희(朱熹‚ 1130-1299)가 무이산(武?山) 복건성 숭안현(福建省 崇安縣)에 은거하면서 그곳 구곡계(九曲溪)의 빼어난 경치를 읊은 <무이도가(武?櫂歌)>이다. 주희는 54세 되던 1183년 무이구곡 제5곡에 무이정사(武?精舍)를 짓고 강학(講學)과 은거를 시작했는데‚ 여기서 그의 학문적 기틀이 형성되었다 한다. 그래서 유학자들은 이 시를 널리 애송하곤 했는데‚ 서시(序詩)를 포함 모두 10수로 흔히 이를 각각 한 폭에 써서 10곡 병풍을 만든다. 정로의 글씨에서는 서시를 제외한 9수를 8폭에 연이어 썼다. 말미의 “세청양지소춘(歲靑羊之小春)”는 을미년 십월(乙未年 十月)이므로 1775년에 해당된다. <기타참조> "강운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참고문헌> "강운명품선"‚ 순천대박물관‚ 2001. "한국인물대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