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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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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만장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글을 써놓은 기(旗) <개설> 죽은 이를 애도하여 지은 글‚ 또는 그 글을 명주나 종이에 적어 기(旗)처럼 만든 것으로 장사 때 상여를 따라 들고 간다 <역사> 춘추전국시대에 친척이나 친구가 죽으면 상여의 뒤를 따라가며 애도하는 노래를 불렀는데 이를 만가(輓歌)라고 하였으며‚ 옆에 따르던 사람이 받아 기록한 것이 만사(輓詞)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형태 및 특징> 서암스님의 다비식 때 쓰인 만장으로‚ 만사(輓詞)라고도 한다. 만(輓)이란 앞에서 끈다는 뜻으로 상여가 떠날 때 만장을 앞세워 장지로 향한다는 뜻에서 만장이라고 부르며‚ 망인이 살았을 때의 공덕을 기려 좋은 곳으로 갈 것을 인도하게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만사의 규격은 일정하지 않으며‚ 오언절구와 오언율시 또는 칠언절구와 칠언 율시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고시체를 본떠서 장문시의 글을 짓거나 4자체로 쓰는 경우도 있으며‚ 요즘에는 한글로 써진 것도 있다. 내용은 일반적으로 망인의 학덕‚ 이력‚ 선행‚ 문장‚ 직위 등에 대한 칭송과 망인과 자기와의 친분관계 등을 표시하고‚ 평소에 다정하게 지냈던 일이나 특별한 일을 떠올려 두 사람의 관계를 밝히기도 한다. 또한 자기와의 관계가 없고 친면이 없으나 평소에 존경하거나 흠모하여 교제를 원한 사이에도 그 뜻을 밝히는 만장을 지으며‚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만 그 죽음 자체를 슬퍼하여 인생의 허무를 말하기도 한다. 만장의 길이와 폭은 규격으로 정해지지는 않았으나 색상도 가지가지여서 백‚ 청‚ 홍‚ 황 등 다양하게 사용한다. 만장의 위와 아래는 작은 축대를 사용하고 대나무로 깃대를 만든다. 깃대의 머리에는 약간의 수식을 하고 아래쪽의 공란에는 연꽃무늬를 그려 넣기도 한다. 장례의 행렬에서 반드시 영정의 뒤를 따르게 하고‚ 장례가 끝난 뒤에는 빈청(賓廳)에 보관하여‚ 망인의 문집을 발간할 경우 부록에 원을 수록한다. 서암스님의 본명은 송홍근(宋鴻根)이고 1917년 10월 8일 부친 송동식(宋東植)과 모친 신동경(申東卿) 사이에서 5남 1녀 중 셋째로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셨다. 부친께서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단체의 지도자로 활약함에 따라 가족은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돌게 되어 추위와 굶주림으로 유년시절을 보내셨다. 1932(16세)년에 예천 서악사의 화산(華山)스님을 은사로 수행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1935(19세)년에 김룡사에서 낙순 스님을 戒師로 모시고 사미계를 받게 된다.1937(21세)에 김룡사에서 금오(金烏)스님의 밑에서 보살계와 비구계를 받고‚ 그해 대덕법게를 품수하게 되태를 수습하고 2개월 만에 사퇴하셨다. 1979(63세)에 희양산 봉암사 조실에 추대되시어 낙후된 가람을 중창하시고 조계종 종립선원으로 만드셨다. 1991(75세)년에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에 취임하시고 1993(77세)년에 제 8대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되었다. 2003년 3월 29일 오전 7시 40분에 봉암사 염화실에서 87세를 일기로 입적(入寂)하셨다. 만장의 내용은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이다.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로 <아제>는 ‘가다’는 뜻이고 <바라아제>는 ‘피안으로 가다’는 뜻이다. <승>은 집단 모두 혹은 총(總)의 뜻이 있고 <모지>는 ‘보리’‚ 즉 각(覺)의 뜻이다. <사바하>는 ‘원만‚ 성취‚ 구경’등의 뜻이 있는데 앞의 내용이 원만히 이루어지도록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반야심경은 <반야경>의 내용을 그 핵심내용만 추려 요약한 반야경전이다. 반야심경 ·심경이라고도 한다. 당나라 현장(?)이 번역하였다. 관자재보살이 반야행을 통해 나타나는 법의 모습을 단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불교의 기초적인 법문인 오온(五蘊) ·12처(十二處) ·18계(十八界)가 모두 공(空)하며‚ 12연기 또한 공하며‚ 4가지 진리 또한 공하다고 하여 모든 법의 공한 이치를 나타내었다. 특히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으로 대표되는 공의 이치는 어떤 대상이든 고정적인 성품이 없음을 나타내었으며‚ 오직 보살은 마음에 가림이 없는 반야바라밀의 수행으로 최상의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그러한 이치는 또한 신묘하여 진언으로서 끝내고 있다. <유사용어> 만사(輓詞). 만시(輓詩) 었다. 1938(22세)년에 김룡사 강원을 졸업하고‚ 일본대학교 종교과에 입학하여 수학하던 중 폐결핵 말기 진단을 받고 귀국하였다. 1942(26세)년에 김룡사 중암선원에서 용맹정진하여 각고의 수선(修禪)을 하였다. 1944년 이후 금강산 마하연과 사불산 대승사‚ 나한굴‚ 덕숭산 정혜사‚ 가야산 해인사‚ 지리산 칠불암‚ 희양산 봉암사 등지에서 정진하셨다. 특히 1946(30세)년 계룡산 나한굴에 들어가시면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살아서 이 굴에서 나가지 않으리라’결심하고 고행에 들어 갔다. 후에 누가 오도송(?道頌)을 묻자 “오도송이고 육도송이고 나는 그런 거 없다”고 하셨다. 1970(54세)에 봉암사 조실(祖室)로 추대되었으나 사양하시고 1975(59세)년에 제 10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맡아 어려운 종단사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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