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연암집 건

추천0 조회수 68 다운로드 수 1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연암집 건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2-0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정의> 박지원(燕岩 朴趾源 1737∼1805)의 시문집이다. <개설>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자는 미중(美仲)‚ 중미(仲美)‚ 미재(美齋).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冽上?史)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북학파(北學?) 실학자(實學者). 홍대용(??容)‚ 박제가(朴齊家) 등과 교유하였다. 이 책은 저자의 아들 종채(宗采)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편차한 것을 김택영(金澤榮)이 산정·편교(編校)하여 1900년에 원집을‚ 1901년에 속집을 전사자(全史字)로 초간하고 이를 다시 합편·산정하여 1916년에 중국의 남통(南通)에서 연활자로 중간한 후‚ 종채(宗采)의 편차본(編次本)을 가지고 박영철(朴榮喆)이 재편·보충하여 1932년 경성에서 연활자로 인행한 삼간본(三刊本)이다. <일반적인 형태 및 특징>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시문집이다. 1900년(광무 4) 창강 김택영에 의해 원집 6권 2책이 간행되었고‚ 그 이듬해에 속집 3권 1책이 간행되었다. 본소장본은 이 초간본이다. 그러나 이 김택영의 전후본은 모두 편집자인 창강 자신의 관점에 따라 문장본위로 가한 것이므로 이는 연암유저의 일부를 인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뒤 1932年 박영철에 의해 다시 17권 6책으로 간행되었는데 이는 연암의 아들 종간 등이 편집해 두었던 57권 18책의 필사본을 바탕으로 하고 거기에 「열하일기」와 「과농소초」를 별집으로 하여 합간한 것이다. 물론 약간의 소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연암전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박영철본이다. 그의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살펴보면‚ 연암은 44세때에 있었던 연행을 계기로 하여 그의 사상체계에 한 전환점을 마련케 된다. 삼종형 김성위 박명원의 사행을 따라 청조치하의 북중국과 남만 주일대의 풍성한 물질의 세계를 돌아보고 와서 그의 가치체계에 큰 변화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충 효 열과 같은 인륜적인 것이 지배하던 종래의 사회적 가치체계에서부터 실학 즉‚ 이용후생이라는 물질적인 것으로의 변화를 초래한 것이 그것이다. 이용이 있은 다음에 후생이 있고 후생이 있은 다음에 도덕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하였으며‚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것이면 비록 그 법이 다른 적한테서 나온 것이라도 취하여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내용에 대해서는 이를 창강본과 박영철본을 따로 보이기로 한다. 먼저 창강본은 원집과 속집이 따로 간행되었는데 그 원집의 편목은 아래와 같다. 앞에 민병석의 서가 있다. {卷1}:시부. {卷2}:문부:표‚ 의‚ 서(書‚) 서(序)‚ 제사. {卷3}:문부:도 하리만큼 당시의 신분질서가 그를 방임해 두지도 않았던 것이다. 연암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선비로서의 자기 임무를 발견한 것이다. 비록 손으로 노동은 하지 못할지라도 문필로써 실학으로써 국가의 이익을 창출하고 백성의 복지를 도모할 것을 다짐한 것이다. 당시 농 공 상업이 발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선비에게 실학이 없는 탓이라고 간파한 것이다 이에 이르러 그의 근대적인 선비의식의 한 전범을 찾아볼 수 있다. <유사 관련 용어> 《연암선집(燕巖選集)》 기‚ 논‚ 설. {卷4}:문부:농설‚ 제문‚ 애사‚ 신도비‚ 묘갈명. {卷5}:문부:묘지명‚ 탑명‚ 사상‚ 척독. {卷6}(별집):서(序)‚ 기‚ 잡저‚ 서(書)‚ 발. (호질·허생과 같은 작품은 별집의 잡저속에 수록되어 있다). 끝에 김교헌 등의 발이 있다. 文章家로서의 燕岩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 있거니와‚ 그러한 웅특한 필치로 엮어진 많은 유저를 통하여 우리는 문필가 연암의 진면목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러한 그의 작품속에 반영된 근대적인 사의식을 통하여 사상가 연암의 면모를 아울러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사회 문화적 의의> 연암은 열하일기를 비롯하여 홍범우익서‚ 한민명전의 등 특히 그의 문학작품에 있어서는 자기 스스로를 거리를 두고 비평의 아이러니가 번득이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귀농의 뜻이 있어도 그가 돌아갈 곳이 없었으며‚ 그렇다고 장사라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emuseum.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