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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장릉 (端宗莊陵 ‚ Danjong Jangneung Tom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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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단종장릉 (端宗莊陵 ‚ Danjong Jangneung Tombs )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5-2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 개요 >
단종(이홍위(李弘暐) : 1441-1457‚ 재위 3년)의 장릉은 비운의 소년 임금 능답게 많은 우여곡절 끝에 조성되었다.
영월로의 유배생활에서 서인(庶人)으로까지 강등되어 사약(賜藥)을 받고 생을 마감한 단종은 영월 야산에 암매장되었던 것을 중종(中宗) 11년(1516년)에 와서야 묘를 찾아 봉분(封墳)을 갖추게 되었다. 그 뒤 240년이 지난 숙종(肅宗) 24년(1698년)에 복위(復位)되어 단종(端宗)으로 묘호(廟號)를 붙이고 종묘(宗廟)에 부묘하고 단릉(單陵)의 형식으로 능호를 장릉(莊陵)이라 하게 됐다.
추봉된 능의 예를 따라 난간석(欄干石)과 무인석(武人石)은 설치하지 않았고 양식 또한 가장 간단하게 조성되었다. 특이한 점은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신하들을 장릉에 배향하기 위해 장릉 밑에 배식단(配食壇)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문종의 외아들로 태어난(세종 23년) 단종은 8세 때에 왕세손(?世孫)에 책봉되고 문종이 승하하자 1452년 12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어린 단종을 보위했던 영의정 황보인(皇甫仁)과 우의정 김종서(金宗瑞)와 함께 성삼문‚ 박팽년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종의 숙부였던 수양대군(首陽?君)은 궁중의 역사(力士)였던 한명회(韓明澮)와 함께 자신의 동생인 안평대군(安平?君)이 역모를 도모했다는 죄명으로 단종을 보위했던 충신들을 제거하는 일대 거사를 일으킨 이른바 계유정난(癸酉靖難)의 사변(事變)을 일으키게 된다.
곧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선위(禪位)를 하고 상왕(上?)으로 2년여를 지내다가 사육신(死六臣)들의 단종 복위(復位) 사건이 터지자 세조에 의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강원도 영월(寧越)로 귀양을 가게 되어 결국 권력에 대한 수양대군의 야심으로 단종의 폐위와 사망하게 되었다.
ㅇ 이용시간 : 하계 09:00~18:00‚ 동계 09:00~17:00
< 규모 >
ㅇ 면적 : 3‚495‚236㎡
< 유래 및 연혁 >
ㅇ 1457 시신 안장
ㅇ 1516. 12. 15 봉분을 갖춤
ㅇ 1580 상석‚ 표석‚ 장명등‚ 망주석 건립
ㅇ 1689 장릉 조성
< 주요 시설 >
ㅇ 상석(床石)‚ 장명등(長明燈) 망주석(望柱石)‚ 문석(文石)‚ 석수(石?) 기타정보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kcti.re.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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