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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음각모란문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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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청자음각모란문병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3-25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원시문양 설명]청자 병으로 어깨에는 여의두무늬가 음각되었고‚ 몸체에는 모란무늬가 음각되었다. 청자는 11세기 말에서 12세기 사이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는데 그것은 양적인 증가뿐만 아니라 빛깔과 장식기법‚ 종류의 다양함‚ 우아한 형식미 등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비색(翡色)이라 불리는 12세기 전반 고려청자의 맑고 푸른 옥빛은 절정에 있었다. 여의(?意)는 범어로 아나룻다(Anaruddha‚ 阿那律陀)를 번역한 말이다. 본래 여의라는 것은 승려가 독경이나 설법 등을 할 때에 지니는 도구이다. 여의는 대나무‚ 뿔 같은 것으로 만들거나 금속으로 만들었는데‚ 한자의 마음 심(心)자를 전서체로 표현한 구름 모양의 머리장식을 붙여 만들었다. 그러므로 ‘여의’란 곧 ‘마음’을 상징하며 그 모양은 ‘구름’으로 나타내었던 것이다. 여의라는 도구는 강론하는 승려가 글을 기록하여 두고 참고하는데 쓰는 홀(笏)과 같은 역할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손이 닿지 않는 등의 가려운 데를 긁을 때에도 요긴하게 쓰여진다고 한다. 따라서 이 도구에 ‘여의’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으며 글자 뜻 그대로 “모든 것이 뜻과 같이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의의 형태는 통일 신라 시대의 와당과 전‚ 채화칠기 그리고 불교적인 장식에서 유행되었던 보상화무늬와 보운무늬에서 나타나고 있으나‚ 본격적으로 공예 미술에 쓰이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 이후인 것으로 보인다. 여의두문은 청자 상감매병의 주둥이 둘레‚ 석탑‚ 석등 등의 테두리 장식으로 많이 나타나며‚ 그 밖에 목공 가구의 금구 장식에서 여의 형태가 많이 나타난다. 모란은 화려한 자태로 인하여 꽃 중의 왕으로 일컬어지며‚ 화목·부귀영화·번영을 상징한다.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는「애련설(愛蓮說)」에서 “모란은 꽃 가운데 부귀한 자이다”고 하여 모란이 부귀를 상징함을 찬한 바 있다. 또한 모란이 주제로 등장하는 그림들 가운데 부귀장춘(富貴長春)은 오래도록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도안이며‚ 장명부귀(長命富貴) 역시 생일을 축하하면서 장수와 부귀를 누리기를 기원하는 도안이다. 또한 모란과 수탉이 주제로 등장하는 공명부귀(功名富貴)는 벼슬길에 나아가 이름을 날리고 부귀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고려시대 청자에서 간결하게 도안된 모란무늬가 쓰이기 시작하여‚ 조선시대 분청사기를 비롯하여 청화백자·진사백자·철화백자 등에서 민화풍의 회화적인 필치로 그린 모란무늬가 다양하게 나타난다.개별문양여의두문모란문여의두문모란문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s://www.kcisa.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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