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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화개첩 (小苑花開帖)_국보 제238호 소원화개첩(2014년 국보 동산 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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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소원화개첩 (小苑花開帖)_국보 제238호 소원화개첩(2014년 국보 동산 앱사진)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5-2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소원화개첩에 대한 설명입니다.조선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1418∼1453)의 글씨로‚ 말아서 둘 수 있게 만든 형태이다.
안평대군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시‚ 글씨‚ 그림에 모두 능하였으나 특히 글씨에 능하였다. 당시 복잡한 정권 다툼에 말려들어 젊은 나이에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죽은 뒤에는 그의 글씨가 불태워져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비문이나 글씨교본 그리고 일본에 있는 〈몽유도원도〉의 발문과 〈소원화개첩〉에서 뿐이다.
〈소원화개첩〉은 가로 16.5㎝‚ 세로 26.5㎝로 비단 위에 행서체로 쓰여진 것으로 모두 56자가 들어 있다. 글 끝에 낙관과 도장이 구비되어 있다. 원래의 시는 당나라 시인인 이상은이 쓴 것이나 원문과 다른 곳이 몇 군데 있다. 비록 소품이나 행서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조맹부체의 영향을 받았으나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웅장하고 활달한 그의 기품이 잘 나타나 있다. 전형적인 그의 서풍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으로 낙관과 도장이 찍혀있어 안평대군의 진본임이 확실한‚ 국내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그의 유일한 작품으로 귀중한 가치가 있다.
〈소원화개첩〉은 2001년에 도난되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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