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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잉군 초상 (延?君 肖像)_보물 제1491호 연잉군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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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연잉군 초상 (延?君 肖像)_보물 제1491호 연잉군 초상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5-2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연잉군 초상에 대한 설명입니다.<연잉군초상>은 화면의 좌측 상단에 “初封延仍君古號養?軒”이라 적혀있어 이 본이 영조가 임금이 되기 이전에 제작된 延 君 시절 圖寫本임을 알 수 있다. 紗帽‚ 白澤 胸背를 부착한 綠袍團領‚ 犀帶‚ 검은색 녹피화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정장관복차림에 공수자세로 앉아 있는 좌안8분면의 전신교의좌상이다.
이 상은 영조 21세(1714년) 때 진재해( -1735 이전)가 그린 것으로 영조 21년(1745)에 慶熙宮 泰寧殿에 봉안되었다가 정조가 즉위하자 잠시 景賢堂에 두었다가 정조 2년(1778년) 3월에 선원전으로 이봉되었다. 이 본은 가장자리가 불에 타서 1/3이 결손되었으나 얼굴‚ 흉배‚ 관대‚ 족좌 부분이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어 당시의 초상화의 기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현전하는 조선시대 어진은 전주 慶基殿의 태조어진‚ 고궁박물관 소장의 철종어진과 익종어진 등 극소수만이 남아 있는 실정이라 이 상은 영조가 연잉군 시절의 초상이라 할지라도 어진 연구에 참고 자료가 된다. 특히 1713년(숙종 39년) 肅宗御眞圖寫에 主管화사였으며‚ 이후 조영석의 형 <趙榮福像> 등 사대부들의 초상화 제작에도 참여한 진재해의 초상화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이 상은 보물 589호로 지정된 <강현상>과 함께 18세기 초기 정장관복형식의 초상화의 형식을 대표하는 기준작으로 평가된다.
ㅇ 규격(세로x가로) : 183×87㎝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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