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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미루 (望美樓)_망미루
- 저작물명
- 망미루 (望美樓)_망미루
- 저작(권)자
-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 출처
- 공표년도
- 창작년도
- 2015-05-29
- 분류(장르)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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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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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미루에 대한 설명입니다.이 누각은 1742년(영조 18) 동래부사 김석일(金錫一)이 동래부 청사인 동헌(東軒) 앞에 세운 문루이다.
옛날 한양으로부터 부임해온 어느 동래부사가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이 누각을 망미루로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1919년 동래의 3 1운동은 이 누각에서의 만세 삼창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면에는 동래도호아문(東萊都護衙門)라고 쓰여진 큰 편액이 걸려 있고‚ 후면에는 망미루(望美樓)라는 큰 편액이 걸려 있다. 1895년(고종 32) 동래도호부가 동래관찰사영(東萊觀察使營)으로 승격됨에 따라 일명 포정사(布政司)라고도 불렀다. 누각 위에는 동래성 4대문의 여는 시각과 정오를 알리기 위해 치는 큰 북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시가지 정리계획에 따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높은 주초석(柱礎石) 위에 놓여 있다. 팔작(八作)지붕으로 된 2층 누각이며‚ 두공(枓 ) 양식은 2익공(二翼工)이다. 마루는 귀틀마루이며‚ 주위에는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둘렀다. 처마는 부연(?椽)이 붙은 겹처마이다. 이 누각은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관아 문루로 부산지방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 저작물 파일 유형
- 저작물 속성
- 1 차 저작물
- 공동저작자
- 1유형
- 수집연계 URL
-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 분류(장르)
- 사진
- 원문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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