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 이미지 유형

라이선스 유형

이미지

언양부로산봉수대 (彦陽?老山烽燧臺)_언양부로산봉수대

추천0 조회수 105 다운로드 수 1 일반문의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작물명
언양부로산봉수대 (彦陽?老山烽燧臺)_언양부로산봉수대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5-2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언양부로산봉수대에 대한 설명입니다.봉수는 과거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대의 군사통신제도이다. 조망이 양호한 산정에서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국경과 해안의 안위를 중앙에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봉수제가 성립된 것은 1149년(고려 의종 3)으로‚ 1급에서 4급의 봉수 거화수(炬火數)를 규정하고‚ 봉수군의 생활대책을 마련해 주었다. 조선 세종대에 이르러 그 체제가 정비되었다. 5거 거화수 등 관계 규식 마련‚ 각 도 연변의 연대(烟臺) 축조‚ 봉수선로 획정 등을 통해 그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각 봉수에는 오장(伍長)과 봉수군(烽燧軍)이 교대로 근무하면서‚ 평상시에는 한 홰[烽]‚ 적이 나타나면 두 홰‚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세 홰‚ 적이 국경을 넘어오면 네 홰‚ 적과 접전하면 다섯 홰의 봉수를 올리도록 하였다. 1894년(고종 31)에 전보통신이 보급되면서 폐지가 결정되었고‚ 다음해 각처 봉대와 봉수군을 폐지함으로서 모든 봉수제는 폐지되었다.
봉수는 성격에 따라 경봉수(京烽燧) 내지봉수(內地烽燧) 연변봉수(沿邊烽燧)로 구분된다. 경봉수는 전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하였던 중앙봉수로서 서울 목멱산(木覓山)에 위치하여 목멱산봉수 또는 남산봉수라고 불렀다. 연변봉수는 해륙 변경(涇陸邊境)의 제1선에 설치하여 연대라 하였으며‚ 내지봉수는 연변봉수와 경봉수를 연결하는 중간봉수로서 수적으로 다수였다.
삼남면 교동리 봉화산(해발391m) 정상에 위치한 부로산봉수는 남쪽의 양산 위천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의 소산봉수(두서면 서하리)로 신호를 전하는 역할을 한 내지봉수이다. 대응 봉수노선의 거리는 남쪽 위천봉수와는 15.36㎞‚ 북동쪽 소산봉수와는 9.3㎞이다. 현재 울산지역의 봉수 중 가장 높은 곳에 입지하고 있으며‚ 언양읍성과도 인접하고 있다.
『헌산지(?山誌)』의 기록에서 부로산봉수의 비치물목이 확인된다. 거화(擧火)시설과 거화를 위한 재료‚ 무기류 등이 나타나 있어‚ 시설현황 및 운영체계를 알 수 있다. 또한 봉수군의 생활에 필요한 기와집 4칸이 존재하였는데 각종 물자를 보관하고 봉수군이 거주하던 건물로 추정이 된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