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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영축사지 (栗里靈축寺址)_율리영축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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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율리영축사지 (栗里靈축寺址)_율리영축사지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5-2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율리영축사지에 대한 설명입니다.영축사지(靈鷲寺址)는 영축산‚ 문수산‚ 남암산 등의 산등성이와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영축산 자락의 말단부 평지에 위치한다. 영축사지 주변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인 망해사지와 청송사지가 1㎞내외의 거리에 있어‚ 이 일대가 통일신라시대 울산 불교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영축사의 창건 유래는 『삼국유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683년(신문왕 3)‚ 온천에서 목욕하고 돌아오던 재상 충원공(忠元公)은 꿩이 매에게 쫓겨 굴정현(屈井縣) 현청(縣廳) 북쪽 우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꿩은 날개를 벌려 새끼 두 마리를 감싸고 있고‚ 또 매는 이를 잡지 않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절을 세울 만한 곳이라 여겼다. 이를 왕께 아뢰어 현청을 옮긴 뒤 그 곳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2012년 울산박물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기 전‚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삼층석탑 부재가 동서로 나누어져 있었고‚ 남쪽에는 귀부(龜趺)가 확인되었으며‚ 주변에서 ‘영축’명 기와편이 채집되었다.
발굴조사(1차) 결과‚ 통일신라시대 금당지 1동‚ 동 서탑‚ 중문지 1기‚ 석등의 하대석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금당지를 중심으로 쌍탑이 위치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가람배치임을 알 수 있었다.
금당지는 정면 5칸‚ 측면 5칸의 정방형 구조로‚ 이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확인되지 않을 만큼 특이한 형태이다. 동 서탑은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를 갖춘 전형적인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이다. 이 외 석등 하대석과 정면 3칸‚ 측면 1칸의 중문지가 확인되어‚ 금당지-탑-석등-중문지라는 기본 가람구조였음을 알 수 있다. 유물은 비석편‚ 금동불상 등이 출토되었다. 영축사지는 울산지역 불교문화 연구에 상당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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