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오천리 이운용 장군 묘역 (宜寧 梧川里 李雲龍 將軍 墓域)_이운용 장군 묘역 전경
-
해당 공공저작물은 외부사이트에서 보유하고 있는 저작물로써, 원문보기 버튼 클릭 시 외부사이트로 이동됩니다. 외부사이트의 문제로 인하여 공공저작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사이트 바로가기 를 클릭하여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 저작물명
- 의령 오천리 이운용 장군 묘역 (宜寧 梧川里 李雲龍 將軍 墓域)_이운용 장군 묘역 전경
- 저작(권)자
-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 출처
-
- 이용조건
-
- 공표년도
-
- 창작년도
- 2015-05-29
- 분류(장르)
- 사진
UCI 로고
- 요약정보
-
의령 오천리 이운용 장군 묘역에 대한 설명입니다.이운용(李雲龍)은 1562년 경북 청도에서 남해 현령을 지낸 이몽상의 아들로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발발 당시인 1592년 옥포만호로서 옥포대첩에서 공을 세웠다. 1604년에는 선무공신으로 식성군(?城君)에 봉해졌고‚ 동 9월에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인물이다. 광해군 2년(1610년 사망한 후 병조판서로 추증되었다. 이 묘는 본래 경북 청도에 있었으나‚ 20년 후인 1630년 그의 아들 평택현감 이암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졌다. 현재 이곳은 외손인 밀성손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그 내력은 택당 이식이 쓴 그의 묘비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묘역에는 현재 이운용의 묘를 비롯하여 묘비‚ 상석과 향로석‚ 동자석 1조(2기)‚ 망부석 1조(2기) 등 석조물이 일괄로 남아 있다. 봉분은 높이 3m 직경 6m 정도의 원분으로‚ 봉분의 아랫부분에는 치석한 석재를 가지런히 돌렸다. 아래에 받침이 되는 돌을 돌출되게 깔고 그 위에 면석처럼 돌을 얹었다. 구릉의 높은 쪽인 뒷면에는 돌을 돌리지 않고 꼬리가 길게 돌출한 것이 특징이다. 봉분의 모습으로 보아 후대에 크게 수리하지 않은 듯한데‚ 둥글다기보다는 뾰족한 것처럼 처리된 것 또한 독특하다. 묘비는 받침대를 갖추고 있으며 지붕은 없다. 비면이 마모되어 있으나 판독이 가능하고‚ 비문의 전체 내용은 이미 번역되어 있어 ‘?城君實記’에 수록되어 있어 생애와 무공을 잘 이해할 수가 있다. 받침에 조각된 花文은 선명하다. 동자석은 80㎝ 내외의 높이로 낮은 편이며‚ 양쪽이 같은 문인석의 형태이다. 얼굴을 제외한 전체 조각이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다.
- 저작물 파일 유형
-
- 저작물 속성
-
1
차 저작물
- 공동저작자
-
1유형
- 수집연계 URL
-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 분류(장르)
-
사진
- 원문제공
-
원문URL
저작물 정보 레이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