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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장담 충신각 (槐山 張潭 忠臣閣)_장담 충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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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괴산 장담 충신각 (槐山 張潭 忠臣閣)_장담 충신각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5-2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괴산 장담 충신각에 대한 설명입니다.張潭 忠臣閣은 인동장씨 집성촌에 세운 忠臣門으로 李麟佐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 張潭의 정려이다. 1729년(영조 5년) 청안면 청룡리의 논으로 경작되는 들판에 세웠던 것을 조천리로 이건한 것이다.
장담 충신각은 약 40년 전(1969년대 후반)에 이곳으로 이전하였다고 하나 높은 석주형 주초 위에 짧은 원주를 세운 맞배 목조와가로 전통적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높은 석주형 주초 위에 짧은 원주를 세운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석주형 주초나 이익공계통의 공포 등은 정려로서의 격식을 갖추고 잇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내부에는 『?武原從 一等功臣 忠臣 贈 通政??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仁同張公潭之 門』이란 편액과 『移建 重修記』가 있다. 정면에는「忠臣門」·「百世樹風」이란 현판을 달고 보호책을 둘렀다.
張 潭( ∼1728)의 호는 樹風亭‚ 본관은 仁同으로 通禮 張仁溪의 후손이다. 영조 4년 청주에서 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벼슬이 없는 處士로서 의병을 일으켜 난을 진압하다 순절하니 그의 동생 張煥이 나머지 군사로 적을 토벌하여 복수하였다. 후에 이 사실이 ?聞되어 충신으로 정려되고 ?武原從勳一等功에 策錄되었으며‚ 正祖朝에 表忠을 명하고 左承旨에 贈職되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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