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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안씨연창위종가 (竹山安씨延昌慰宗家)_1970년대제사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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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죽산안씨연창위종가 (竹山安씨延昌慰宗家)_1970년대제사모습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5-2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죽산안씨연창위종가에 대한 설명입니다.가옥은 평탄한 분지에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북으로 약20리 가량 떨어져 회암사가 있으며 회암사의 배산인 칠봉산의 능선이 남으로 뻗어내려 만송리를 동으로 감아돌아 남으로 천보산으로 이어져 이 마을의 안산이 되고 있다. 서쪽으로 약 10여리 떨어져 양주관아와 향교가 위치하고 있다. 마을의 입구에는 고목과 공동우물이 있고 이곳에서 약 20여m 떨어져서 이 종가가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전체적인 집의 구조는 ㅁ자형으로 외부마당에 면한 바깥채는 대문과 사랑이 있었으나 퇴락이 심하여 현대식 건물로 개조하였다. 이 가옥은 마을의 입향조로서 세종(世宗:1418~1450)의 둘째딸인 정의공주(貞懿公主)의 부마(駙馬)인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1415~ )과 그 후 그의 아들인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를 역임한 안종탄(安從坦:1490~1538)이 10세 되던 해인 1500년(연산군6년)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이 마을은 죽산 안씨의 집성촌으로 내려오다가 임진·병자의 양란을 맞아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영조대(1725~1776)에 이르러 마을에 정자 등이 건립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가옥이 중건되었고‚ 그 후 일정기와 한국전쟁을 통해 부분적으로 보수와 변형의 과정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가옥의 대청 위 종도리 측면에 묵서명이 쓰여 있으나 퇴락이 심하여 판독이 불가능한 상태로서 현 건물의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가구의 치목이나 맞춤 그리고 공간구성으로 미루어 조선 후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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