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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윤선도유적지 (孤山尹善道遺跡地 ‚ Historic Site of Gosan Yun Seon-d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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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고산윤선도유적지 (孤山尹善道遺跡地 ‚ Historic Site of Gosan Yun Seon-do )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9-09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 개요 >
조선조의 문신‚ 국문학상 대표적인 시조시인인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선생의 유적지이다. 윤선도의 자(字)는 약이(約而)‚ 호(號)는 고산(孤山)또는 해옹(涇翁)이다. 선생은 광해군4년(1612)에 진사(進士)되고 4년 후 성균관유생으로서 권신(權臣)의 횡포를 지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벽지에 유배되었다. 광해군15년에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자 석방되어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취임하였으나 곧 사직하고 이 곳 향리(鄕里)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인조6년(1628) 별시문과(別試文科)의 초시(初試)에 장원한 후 봉림(鳳林)과 인평(麟坪)을 모시는 왕자사부(?子師傅)가 되고 한성서윤(漢城庶尹)과 예조정랑(禮曹正郞)을 역임하는 등 수차에 걸쳐 나라에 중용되었다. 병자호란 후에는 주로 완도의 보길도와 해남의 수정동 및 금쇄동에 은거하여 자연에 들어 원림(苑林)을 경영하고 산중신곡(山中新曲)과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등 불후의 명작을 이루어 조경문화 및 국문학의 발전에 큰 공을 남겼다. 그 사이 효종의 부름으로 벼슬에도 나아갔으나 당쟁으로 다시 유배당하는 등 많은 파란을 겪다가 현종12년에 85세로 졸(卒)하였는데 숙종원년에 신원되어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종되고 시호를 충헌(忠憲)이라 하였다.
유적지에는 선생이 시문에 열중하던 해남윤씨어초은공파(涇南尹氏漁樵隱公?) 종가의 고택과 녹우당(綠雨堂)(사적 제167호)‚ 그리고 그의 선조 어초은사당(漁樵隱祠堂) 외에 고산사당(孤山祠堂) 및 추원당(追遠堂)이 있다.
유물전시관에는 윤공재자화상(尹?齋自畵像)(국보 제240호)을 비롯하여 해남윤씨가전고화첩(涇南尹氏家傳古畵帖) (보물 제 481호)‚ 윤고산수적관계문서(尹孤山手蹟關係文書)(보물 제 482호)‚ 14년 노비문서(보물 제 483호) 등 소중한 유물이 있다. 뒷산 중로에 있는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 241호)은 약 500년전 선생의 선조가 이루어 놓은 수림으로 알려져 있다.
< 주요시설 >
ㅇ 녹우당‚ 어초은사당‚ 고산사당‚ 추원당‚ 유물전시관‚ 비자나무숲 등 기타정보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kcti.re.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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