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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년 기념 세계한국학대회 참여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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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광복70년 기념 세계한국학대회 참여후기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2015-08-31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1부 : 도착~개회식2015년 7월 24일 금요일‚ KF가 주최하고‚ 외교부와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후원하는 <광복70년‚ 세계 속의 한국과 한국학>에 다녀왔다!
아무래도 이번 포럼에서는 조금 깔끔하게 입어야겠다 싶어서 정장도 맞추었다. 출발하기 전 부터 설�다!
8시 30분까지 시청 근처의 "웨스틴 조선 호텔"에 도착하기 위해 6시 30분 기상‚ 그리고 2호선을 타고 바로 시청역에 도착해서 조금 걷기.아침부터 비가 쪼르르르 왔다. 뭔가 시원하면서도 좋은 느낌. 막 밝은 날이었으면 더워서 정장입기 정말 싫었을텐데‚ 잘 됐다 싶었다.도착! 입구에 들어가기 전부터 설�다. 입간판이 등록 장소를 알려준다.등록하니‚ 여러가지 물건이 담긴 에코백과 명찰을 주신다. 에코백에는 이렇게 기념 텀블러가 들어있었다 :)
역시 KF는 배려가 정말 좋아요. 이외에도 책자 및 볼펜 등등‚ 따로 종이와 필기구를 가지고 오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게 배려해주신다.위엄돋는 세션1 회의장! 역시 제대로 준비되어있는 것 같다. 역시‚ 나라를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들이랄까‚ 항상 뵐 때마다 멋있다.
그리고 스테이지 앞에서도 한 컷! 역광 때문에 얼굴이 잘 안나왔는데‚ 그게 신의 한수였다 (웃음)
이윽고‚ 9시를 조금 넘겨 행사가 시작되었다.
개회식 (09:00-09:50) :
1-1)개회사 (유현석 KF 이사장)사회자분의 환영인사 후 유현석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님의 개회사가 있었다.
한국학자와 각국 대사님들께 인사드리며 말씀을 시작하셨다.
원래 150명 정도의 등록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예상외로 36개국에서 380여명이 참석을 신청하였다고 하신다.
이는 분명히 한국학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할 것이라며. 이사장님께서는 이 놀라운 소식 이외에도‚ 인문학과 사회학자들이 서로 교류하며 한국학의 범주를 새롭게 넓힐 수 있기를 기대하고 한국학이 발전해갈 방향을 모색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셨다.
그냥 으레 하는 말이겠지‚ 하고 그 때는 흘려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딱! 이번 포럼에서 논의된 것들이었다.
1-2) 축사 (정종욱 위원장)정종욱 위원장님께서는 행사의 개최를 축하하시며‚ "한국"이라는 나라가 갖는 의미를 알려주셨다.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경제 발전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은 국가.
맞다. 민주화나 경제발전 둘 중 하나에만 치중하면 분명히 하나를 소홀히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동시'에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부에서는 경제발전을 위주로 하느라 민주화 및 인권문제에 신경을 덜 썼고‚ 민간에서는 많은 희생을 하며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정부와 민간이 서로 성공적으로 상호보완하고 견제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서로를 잘 견제하고 있는가?
새로운 도전을 강조하신 위원장님께서는 또 '통일'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다.
평화와 번영의 동반자로서 북한과 협력‚교류를 통해 통일의 걸을 걸어나가고자 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분명히 쉽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주 바람직한 길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1-3) 기조 연설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기조강연을 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신 권영민 교수님께서는‚ 한국학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 발전해왔는지를 알려주셨다.
한국에 처음 관심을 가졌던 외국인들은 대부분이 선교사거나 정치적 지도자였고‚ 그들이 귀국하여 한국을 소개하는 책자를 쓴 것이 한국학의 출발점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은 알려지자마자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었고‚ 당시 일본인들은 왜곡된 시각으로 한국을 그려내어 식민지 조선을 그려내었고‚ 그 조사방법에 '실증'이라는 명분을 붙여 세계에 널리널리 그들의 시각을 퍼트렸다.
1945년‚ 일본패망으로 인해 한국은 자동적으로 독립되었으나 동서 열강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다시금 분단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에 들어오고‚ 이 경험을 기반으로 한국인의 역사‚ 삶과 문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었다.
그러나 지역별로 (나라별로) 그 경로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여 공통된 그림은 그리기가 많이 어렵다고 하셨다.
하지만‚ 한국학은 만족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중국학이나 일본학에 비해 그 역사가 짧은 한국학은‚ 제도적인 기반이 허약하고 연구 내용도 풍부하지 못하다. 연구자도 특정 분야에 편중되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수님은 학문 외적인 측면에서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그 한국학 후속 세대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해 문제가 크다고 말씀하셨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예로‚ 기금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한국학자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주셨다.
마지막으로‚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학 분야의 기반을 확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
학문적 위상을 한 단계 더 높이기 위해서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한국학 연구가 동아시아 연구의 중심이 서게 되리라 확신한다.
라는 당부와‚ 희망찬 기대로 끝맺음해주셨다.
<후기 1부 끝>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s://www.kf.or.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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