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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도병풍 (牡丹圖屛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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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모란도병풍 (牡丹圖屛風)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국립고궁박물관에는 한·일간의 문화적 교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회화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특히 이들을 통해 조선후기의 통신사 및 근대기의 회화교류에 대해서 살펴 볼 수 있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회화(日本繪畵)는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8)의 것으로 믿어지는 일부의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9세기말~20세기초의 유물들이다. 에도시대의 것으로 믿어지는 작품들은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가 조선왕조에 선물로 보낸 통신사(通信使) 관계의 것으로 확인되거나 추정된다. 일본회화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근대의 작품들은 그 성격으로 보아 일제강점기에 양국 왕실간의 교류 관계를 통해 전해진 것으로 믿어진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의 일본회화들은 금박 등의 금지바탕에 청록 등의 농채를 사용한 장식성이 강한 그림들이거나 일본 특유의 수묵화로서 절충적인 화풍을 지닌 것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궁정취향에 맞는 장식성을 강하게 띠고 있으며‚ 병풍이나 가리개‚ 문짝그림 등으로 궁중에서의 일상생활에 사용되었던 실용적 기능의 유물들이다. 표구도 대부분은 일본식으로 되어 있는데‚ 美州의 〈사계산수도(四季山水圖)〉의 경우와 같은 일부 작품들은 한국식으로 되어 있어 일제강점기에 체류했던 일본화가들의 작품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작품은 전면 금지(金地)에 모란(牡丹)‚ 바위[岩]‚ 물결형[波形] 등의 한정된 수의 소재를 배치하여‚ 클로즈업시킨 것이 화면의 절반을 차지한다. 금지 상하에 금운(金雲)‚ 상방(上方)에 스야리 가스미(すやり霞:平安時代 以來의 日本風景畵‚ 특히 에마끼모노(繪卷物)의 표현에‚ 옆으로 길다랗게 끼어 있는 안개를 표현하는 수법으로‚ 이는 화면을 구획 지우며‚ 원근을 표시하고‚ 또 장면의 전환을 시도한 수법)를 사용하였으며‚ 금운(金雲)의 가장자리에는 두껍고 도톰하게 칠을 하였다. 금박에는 푸른기가 섞여 있고 바위에는 백록(白綠)으로 바탕을 칠했으며‚ 묵(墨)과 금니(金泥)로 윤곽선을 그려 전체에 액센트를 주었다. 그 위에 태점(苔點)을 찍었으며 암준(岩?:바위표현)은 옛 양식을 따랐다. 물결 형태는 狩野?幽樣式으로 표현되어 있고‚ 필치는 조방하다. 모란 꽃잎은 대형(?形)으로 그려졌으며‚ 음영(陰影)을 넣어 입체감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그림의 작가는 梅笑師信(1728-1807)으로‚ 그는 표회사(表繪師:에도막부의 카노가[狩野家]의 오회사 4파외 일족과 그 문인이 독립하여 일가를 세운 화파) ?川水場町狩野?의 화가였다. 호는 ‘梅笑’라고 불리웠는데 처음에는 ‘與信’ 또는 ‘榮信’이라고도 불리웠으며‚ 보력(寶曆)3년(1753)부터 어용회사가 되었다. 『유서서(由緖書)』에 의하면‚ 寶曆十二年(1762)에 조선어용(朝鮮御用)의 屛風一雙繪「牡丹·菊二?」를 그렸다고 되어 있다. 이 작품은 梅笑의 낙관과 「모란(牡丹)」의 그림양식에 의거하여 추측해 보면 「菊二?圖」와 짝을 이루었던 것이며 그 우측(右隻)에 해당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병풍 그림은 명화(明和) 원년(1764)에 도일(渡日)한 통신사(通信使)에게 증정된 것이다. 그림의 우하방(右下方)에 ‘梅笑圖’라는 관서와 주문방형(朱文方形) ‘榮信’인이 찍혀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ogung.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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