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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비금보 (世宗?金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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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세종비금보 (世宗?金寶)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사진
요약정보
「昭憲 ?后之寶」 1446년(세종 28)에 제작한 세종비 소헌왕후의 어보이다. 소헌왕후(1395~1446)의 성은 심씨(沈氏)‚ 본관은 청송(靑松)‚ 문하시중 심덕부(沈德符)의 손녀이고‚ 영의정 심온(沈溫)의 딸이며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송천보(宋?保)의 딸이다. 조선 제4대왕 세종의 비로서‚ 태종 8년(1408) 충녕군(忠寧君) 이도(李?)와 가례(嘉禮)를 올려 빈(嬪)이 되고‚ 경숙옹주(敬淡翁主)에 봉해졌다. 1417년 삼한국대부인(三韓國??人)에 개봉(改封)되고‚ 이듬해 충녕대군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경빈(敬嬪)에 봉해졌으며‚ 같은 해 내선(內禪)을 받아 즉위하자 왕후(?后)로 봉해져 공비(??)라 일컬었다. 그러나 세종 14년(1432) 중궁(中宮)에게 미칭(美稱)을 올리는 것은 옛날에 없었던 일이라 하여 왕비(??)로 개봉되었다. 아버지 심온(沈溫)은 세종이 즉위한 뒤 영의정에 올라 사은사(謝?使)로 명나라에서 귀환하던 중 아우 심정이 군국대사를 상왕(上?:태종)이 처리한다고 불평한 일로 대역(?逆)의 옥사(?事)가 일어나 그 수괴로 지목되어 수원으로 폄출되어 사사(賜死)되었다. 이 일로 폐비의 논의가 있었으나‚ 내조의 공이 인정되어 일축되었다. 1446년에 52세로 죽자 헌릉(?陵)에 장사하였다가 뒤에 세종의 능인 영릉(英陵)으로 이장되었다. 휘호는 선인제성(宣仁齊聖)‚ 시호는 소헌(昭憲)이다. 손잡이는 거북모양을 조각하였고‚ 주황색 방망이 술끈을 부착시켰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ogung.go.kr
분류(장르)
사진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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