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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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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김종원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김종원 활동시기 : 근대이후 상세설명 해방후 이승만대통령이 그의 총애를 가득 받고 혜성같이 드러났다가 사라진 이형적 인물이다. 이 박사 집권 시를 겪은 사람이면 백두산 호랑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름난 괴물이다. 공도 있고 허물도 있지만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한 존재이었음은 틀림없다. 1921년 7월 8일 경산시 중방동 380번지(경산 중앙초등학교 입구‚ 대구은행 경산지점 맞은편)에서 김용화의 장남으로 고고성을 울렸다. 그의 아버지 역시 괴위한 육척의 몸집이었고 한말의 무인이었다. 어려서부터 담력과 완력이 센 골목대장이었다. 경산보통학교(경산초등학교) 5학년을 중퇴하고 손수레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였다. 1938년 일본군 지원병으로 입대하여 복무를 마치고 일시 귀국하였다가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다시 소집되어 남양으로 파견되었으나 심한 말라리아 질환으로 제대하여 귀가한 것은 일본 군대에서의 그의 무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해방 후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군사영어학교(육사 전신)에 들어가게 되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지만‚ 또 일본군 상등병 출신에 지나지 않았는데 대담하게 장교양성학교에 들 것을 결심한 것은 그의 진취적 성격의 소산이라고 생각된다. 입학할 때의 일화가 있다. 시험관이 자격 부족으로 판단하고 짐짓 "저 연병장을 500바퀴 뛰겠는냐"하고 농으로 물었더니 "예. 뛰겠습니다." 단호한 대답을 하고 뛰기 시작하였다. 몇 시간을 기진맥진 그대로 뛰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던 시험관이 문득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력을 다하여 뛰고야 말겠다는 그의 결의가 역력하였다. 그래서 시험관이 생각하는 바가 있어 입학이 허용되었다고 한다. 그의 출세 가도인 국군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호랑의 별명이 어떻게 붙여졌는지 언제부터 불렸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5연대(부산) 3대대장(대위)으로 부산 부두 경비를 맡고 있을 때 일이다. 미군 장교가 짚차를 타고 가다가 부두에서 뭇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연히 소변을 보고 있었는데 마침 김종원이 지나쳤다. 옥신각신 언어 불통 가운데 승강이가 붙었는데 벌컥 화가 치밀어오른 김종원이 수레공장에서 햄머를 휘두르던 그 억센 완력으로 미군을 후려갈기었다. 엄청난 완력에 미군은 대항하지 못할 것 같으니 그냥 줄행랑쳤다. 뒤에 미군이 상대가 누구인가를 수소문하여 바로 부두경비 대대장임을 알고 "호랑이"라 연발하였고‚ 그 말이 전해져서 별명이 붙었다고 하는데 하여간 무수한 일화를 낳은 범상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6·25 이전에 23연대장‚ 양산‚ 영덕에서의 남로당 잔당 유격대 토벌로 활약하였다. 6·25때는 북진하여 수훈하였다. 그의 용명과 과감하고 직선적인 성격이 부산 임시수도에 있는 이 대통령에 전문되게 되었다. 부산지구 헌병대장‚ 경남지구 계엄사령관‚ 경남병사구 사령관‚ 헌병부사령관 등 피난 수도에서 요직을 한 몸에 지녔고 이 대통령의 신임은 대단하였다. 이박사의 명령이면 죽기라도 할 수 있는 충성을 다하였다. 휴전 당시 이박사와 미국의 의견이 맞지 않은 적이 있었다. 김종원이 대통령 집무실에 갔는데 미 대사와 고성으로 다투는 소리를 엿들었다. 김종원이 반사적으로 면담실에 뛰어들어 권총을 뽑아 미 대사를 향하여 우리 대통령에게 반대한다면 그냥 두지 않는다고 외쳤다고 한다. 역시 그의 면모가 약여한 이야기다. 거창사건이 국회에서 떠들썩하자 드디어 국회조사단이 현지조사를 하게 되었다. 김종원이 조사단을 막기 위하여 부하 헌병을 공비로 가장시켜 국회조사단이 가는 앞길에 매복시켜 위협사격을 가하여 국회조사를 방해한 일이 뒤늦게 폭로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민주 정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나 그의 외곬통수의 충성심으로 생각된다. 영어에서 풀리어 군복을 벗자 이 대통령의 총애로 경찰에 투신하였다. 그는 이박사 정권에 필요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서남지구 전투사령관부터 시작하여 전남경찰국장‚ 경남경찰국장‚ 경북경찰국장 다시 전남경찰국장을 거쳐 1956년 치안국장에 올라 전국 경찰의 총수가 되었다. 역발산 기개세의 거한에게 한편 인정도 있었다. 퇴임한 은사를 모시었고 곤란한 옛 벗을 돕기도 하였다. 비록 온당한 절차가 아니었지만 향토를 그 나름으로 돌보았다. 경산시내에 그의 힘으로 도로가 포장이 되었고‚ 대형 소방차가 배치되기도 하였다. 5·16 군사혁명 때 당시 구금되었다가 지병인 당뇨병으로 보석되었고 1964년 사망하였다. 공도 있고 허물도 있고 세평이 한결같지야 않으려만‚ 경산이 낳은 범상치 않던 인물이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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