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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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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김홍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김홍한 호 : 여남/의재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선생의 휘는 홍한(弘漢)이며 자는 여남(汝南)이고 호는 의재(義齋)로 고양부원군 김남득(高陽府院君 金南得)선생의 9세손으로 1544년(중종 39년)에 태어났다. 1592년(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처음에는 청도의병군(?道義兵軍)의 유사(有司)로서 활약하다가 재종숙(再從叔)인 송암 김면(松庵 金沔) 의병도대장) 휘하에서 역전하다 무계전두(茂溪戰투)에서 장렬한 전사를 하였다. 후에 선조대왕(宣祖??)이 선생의 공훈을 가상하여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선생은 난전중에 시신을 거두지 못하여 초혼장(招魂葬)을 지냈으며 그 후손들은 청도에 세거하고 있다. 무계대첩(茂溪?捷)은 점암진대첩(점岩??捷)의 여세를 몰아 무계(茂溪)에 진을 친 김면 의병도 대장(金沔 義兵都?將)은 정인홍(鄭仁弘)의 명을 받고 달려온 중위장 손인갑(中衛將 孫仁甲)과합세하여 같이 싸웠다. 얼마후 왜적의 배가 강을 덮어 오듯 오는데 그들은 정암진(鼎岩?)패전의 설욕을 하고 저 함이었다. 이때 김면 의병도대장은 좌장(좌장)에게 말하기를 "원컨데 제군(諸軍)은 죽음을 각오하고 끝까지 싸우라고 명령하니 전 군사는 정암진(鼎岩?)에서 이겼던 그 하늘을 찌를 듯한 승세로 목숨을 걸고 분격하니 왜적은 강물에 떨어져 죽은 자가 그 수를 헤아리지 못할 정도이어서 강물이 막혀 흐르지 못했고 피는 강물을 붉게 물들였다.이 싸움에서 왜적의 화함(花艦)을 얻었는데 많은 보화가 있었다. 하며 이를 초유사 김학봉(김학봉)에게 보냈다 한다. 이 무계대첩(茂溪?捷)의 전승지는 지금의 고령군 선산면 무계동(茂溪?)이다. 참고문헌 : 송암선생 실기‚ 후손 수단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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