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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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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벽암대사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벽암대사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벽암대사는 1574년에 지금의 충청북도 보은에서 태어나 1659년에 별세하였다. 이 스님은 조선시대의 고승으로 9살에 부친을 사별하고 세상이 덧없음을 깊이 깨달아 14세에 부휴 문하에서 삭발 득도하여 스님이 되었다. 벽암대사는 수선을 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인 부휴와 함께 승병을 크게 일으켜 전쟁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뒤에 그의 명성이 전국에 드높자 광해군은 스님을 불러 봉은사<서울시 뚝섬에 있는 절‚ 선종의 선과 고시장> 주지가 되었으며‚ 판선교 도총섭(지금의 종정과 같은 직위로 당시에는 판선교 도총섭 대감이라는 칭호를 썼다)에 임명되었다. 그는 스승인 부휴가 세상을 떠난 후 중망(여러 사람의 뜻)에 의하여 스승의 자리를 물려 받았으며‚ 법당을 지리산에 짓고 남선불교의 종사가 되기도 하였다. 스님은 그 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다시 승병3‚000명을 모집하여 스스로 항마군이라 칭하여 호남의 관군과 호응하여 싸웠다. 벽암의 나이 9살에 부친을 잃고 허탈감에 빠져 있을 때 어떤 스님께서 하루는 벽암의 사가에 박탈(시주)을 나왔었다. 어린 벽암은 시주를 나온 스님에게 물었다.『왜 사람은 죽어야만 합니까?』시주를 받은 스님은 총명한 인재를 만날 것을 미리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처럼 어린 소년이 너무 과분한 것을 묻는다고 생각하니 내심으로 의아해지기도 해서 스님은 되묻고 부드럽게 웃어주었다.『실은 저의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가 얼마 되지 않는데‚ 왜 사람은 죽어야만 하며‚ 죽은 후에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가 매우 궁금하여 집안의 어른들에게 그 점을 여쭈어도 오히려 어린애가 못 하는 소리 없이 방자하다고 꾸중만 내리십니다. 그래서 늘 궁금하게만 생각하고 있다가 오늘 마침 스님을 뵙고 나니 꼭 스님께서는 저에게 가르쳐 주실 것만 같아서 여쭙는 것입니다』 그렇잖아도 오늘은 재목을 얻을 것으로 미리 알고 일부러 탁발을 나왔는데 매우 총명하고 잘도 생겼구나. 속으로 감탄하며 다음과 같은 법문을 말해 주었다. "모든 이치는 인연이라는 굴레에 의해 태어나고 또한 인연이라는 굴레에 의해서 없어지느니라. 태어났다 함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죽음은 또한 어디로 갔단 말이냐. 태어남은 한 조각 구름이 홀연히 일어남이며 죽음은 또한 구름이 흩어짐과 같다. 뜬 구름 그자체는 본래 실체가 아니며‚ 살고 죽고 왔다 가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소년 벽암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하여 스님에게 묻기를『저 같은 어린애도 스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요?』『스님이 되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나 너는 네 마음만 굳게 먹었다면 될 수 있지…』 『예 저는 스님께서 방금 말씀해 주신 법문을 듣고 부터 마음에 결정을 했습니다.』『음‚ 그렇다면 먼저 네 어머님에게 허락을 얻도록 하여라. 그리고 몇일 몇시쯤 내가 또 올 것이다. 그때 나와 또 만나자.』 스님은 이 말씀을 마치자 곧 총총히 사라졌다. 소년 벽암은 스님이 사라진 곳을 향해 수없이 인사를 하고 더욱더 마음을 굳혔다. 그 후 스님은 소년과 약속한 날짜에 왔으며 소년은 스님을 따라 나섰다. 그때 소년의 나이는 9살이니 세상에 태어나서 10년도 부모 곁에 못살았으며 한참 어리광을 떨고 부모들의 귀여움을 받고 자라야 할 어린이였는데‚ 부모를 버리고 진리를 찾아 스승을 따랐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소년은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뀜에 따라 점점 육체적인 성장도 있었고 정신적인 성장도 했다. 그리하여 이 소년이 저 유명한 벽암선사이며 그 때 노승은 벽암의 스승인 부휴이다. 부휴와 벽암은 스승과 제자 사이이지만 임진란과 병자호란 때는 한 사람의 군인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웠던 것이다. 부휴는 서기 1534년∼서기 1615년때의 조선의 고승이며 속명은 김선수이다. 20세에 삭발 득도 하였으며‚ 임란 당시에 승병을 크게 일으켜 왜놈과 싸웠고 병자호란 때 역시 승병을 일으켜 호군과 싸웠으며‚ 전쟁 후에는 해인사에 주거하였고 송광사에 있다가 지리산 칠불암에서 입적하였다. 시호는 홍각등계이고‚ 저서는 부휴당집 등이 있다. 벽암은 스승인 부휴의 법을 받았으며 당시의 고승으로서 지금도 선가에서는 그의 저서인 벽암록을 읽으며 참선 수행하는데 지침서로 삼고 있다. 이러한 벽암의 부도가 증산면에 있는 쌍계사지에 있는 것은 벽암이 말년에 이곳에 머물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저승을 향해간 것이다. 부도는 대개 고승들의 제자들이 만들어 세우는데‚ 그 속에 고승의 사리나 뼈를 모셔놓고 해마다 다례를 모신다. 이 부도에는 옛날에는 제자들에 의해서 해마다 제사도 올렸을 것이며 명절마다 다례를 올렸을 것인데 오늘날은 그 법손이 다 끊기고 그가 주거했던 절마저 없어지고 청태긴 부도만이 세상의 덧없음을 말해 준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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