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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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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신우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신우 호 : 퇴재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신우의 호는 퇴재(退齋)이며 아버지는 아주신씨의 의성 입향 선조인 판도 판서 정숙공 윤유다. 공은 전라 안렴사로 있으면서 자기의 맡은 직분을 수행함에 힘쓰고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고려말 사대부들이 더러는 온갖 부정 부패를 일삼아 혼란기를 맞았지만 천성이 청렴 결백했던 그만은 거기에 동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뜻이 맞지 않아 벼슬 자리마저 미련없이 스스로 물러 나왔다. 야은 길재와 같이 개경서 남하‚ 야은은 구미 금오산에 들어가고 공은 단밀 만경산 하에 머물러 숨어 살며 즐기던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조선이 개국된 뒤 태조에 의해 형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고 태종 때도 여러 번 부름을 받았지만 벼슬에는 뜻이 없다며 마다하고 노령의 어버이를 섬기는데만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을 정도로 극진히 하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당시 고려 풍속은 3년 입는 복이 없어 단일로나는데 3년 시묘살이를 하면서 조석으로 호곡‚ 상이 끝나자 그의 피눈물이 떨어진 무덤 앞엔 쌍죽이 돋아 자라므로 그 효성이 지극한 때문이라고 하여 정문이 세워졌다. 그 지극한 효심을 기려 사람들은 그가 산 마을을 효자리라 하고 마을 앞에 흐르는 냇물까지 효수천이라 일컬어 왔었다. 오늘의 단밀면 만경산은 그가 초하루 보름으로 올라 개경을 향하여 망곡하였다 해서 망경산이라 하였음이 뒷날에 변음된 것이라 한다. 검암서원과 단밀의 속수서원에 제향. 현재 단밀면 주선동 들 가운데 유허비와 전각이 서 있어 그의 놀라운 충효의 얼을 되새기게 한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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