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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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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원술랑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원술랑 활동시기 : 삼국시대 상세설명 신라의 통일을 원치않는 당나라는 말갈과 함께 대방(帶方)의 석문(石門)에서 신라군을 공격해 왔다. 용감한 신라군은 장군 의복‚ 춘장 등의 지휘하에 적을 깨뜨리고 당병 삼천여명을 포로로 잡는 큰 전과를 올렸으나 이 승리의 연합군이 반격해 온 것이다. 신라군은 대패하여 장군 효천과 의문 등은 전사하고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우왕좌왕 할 뿐이었다. 김유신장군의 둘째 아들 원술(元述)도 이 패군 속에 있었다. 부장(副將)이기는 했지만 선두에 서서 전선을 정비하려고 분전했으나 뛰어들려고 했다. 그 때 원술의 부하였던 담릉(?凌)이 앞을 가로막았으나 원술은 말에 채찍질하여 적진으로 달려들어 갈려고 한다. 그러나 담릉은 말고삐를 잡고 놓지않는다. 결국 원술은 싸워서 죽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후퇴하는 신라군은 비참했고 적의 추격은 맹렬했다. 거열주(居烈州)에 이르렀을 때까지도 적의 추격은 멈추지를 아니했다. 아진함은 늙은 몸으로 적진으로 돌격하여 싸우다가 전사하니 그 아들도 적진으로 뛰어들어 싸우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아진함 부자의 용감한 죽음을 본 신라군은 전의를 회복하고 반격을 개시하여 가까스로 적의 진격을 저지할 수가 있었다. 이래서 원술 등 신라 장수들은 말없이 서울로 돌아왔다. 문무대왕은 패전의 소식을 듣고 김유신장군에게 대책을 논의하였으나 장군의 뜻과는 반대로 원술에 대한 처벌은 특명으로 용서했다. 원술은 대왕의 특명으로 참형은 면했으나 김유신장군은 그를 자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술은 비록 목숨은 살았으나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멀리 피해서 농촌에서 숨어살았다. 그러던 가운데 문무왕 13년(A. D. 663) 7월 1일에 김유신장군이 79세로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원술은 통곡하며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 지소부인을 뵈옵기를 청했으나 어머니는 원술의 간절한 수청을 단호히 거절했다. 원술은 땅을 치며 통곡하며 떠날 줄 몰랐으나 지소부인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도 만나 뵙지 못한 원술은 바로 태백산 깊은 곳으로 숨어 버렸다. 그후 해는 바뀌고 다시 바뀌어 문무왕15년(A.D.675)이 되었다. 오랜 세월을 두고 당나라와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는데 마침 매소성(買蘇城)에서 양군의 결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원술은 뛸 듯이 기뻐했다. 죽음을 각오한 원술의 분투는 귀신도 길을 피할 만큼 용맹스러웠다. 싸움마다 승리를 거두고 신라군이 크게 이기는 기틀을 만들었고 나라에서도 높은 상으로 그를 치하했다. 그러나 한번 범한 치욕은 끝내 용서받지 못했다. 어머니 지소부인은 그를 자식으로 맞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원술은 너무나 원통하여 벼슬도‚ 상도 모두 버리고 초야에 묻혀 평생을 마쳤다. 그러나 어머니의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지소부인인들 어찌 없었겠는가! 지소부인은 이름 없는 국민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의‚ 그것도 한 분의 밑이지만 만(萬)사람의 위에 있는 지도자의 아내로서 지켜야 할 외로운 길을 이를 악물고 지켜야 했다. 원술은 다섯 아들 중의 둘째로 어려서부터 장래가 촉망되어 부모의 사랑을 받아 오던 귀염둥이였다. 원술을 참형으로 다스릴 것을 간청하고 그를 자식으로 대하지 않았던 어버이의 가슴은 찢어질 것만 같았다. 만세에 교훈을 남겨 나라의 장래를 반석위에 놓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마음가짐이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원술을 떠나 보낸 후 지소부인의 마음은 너무나 괴로웠다. 매소성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는 소식에 기뻐도 했으나 그 결정을 내릴 분은 이미 이 세상에는 없었기에 그를 용서할 수는 없었다. 마음의 괴로움을 달랠 길 없는 지소부인은 남편의 무덤이 있는 산골에 자그마한 암자를 마련하고 염불에 마음을 달래면서 남편의 명복과 자식의 행복을 빌면서 여생을 보내기로 했다. 이 암자가 송화방(松花傍)이며 그후 오래도록 송화가루가 휘날리는 계절에 온 집안사람이 여기 모여 지소부인의 유덕을 추모했다고 한다. 참으로 그 아버지‚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었다. 이러한 아버지가 나라를 다스리고 이러한 어머니가 가정을 다스릴 때 어찌 나라가 번창하고‚ 가문이 성하지 않겠는가! 신라의 통일이 결코 우연도 기적도 아니였슴을 다시 한번 마음에 되새기고 우리들의 마음의 양식으로 삼을 때 신라의 영광을 되찾고 아세아를 비추는 가장 큰 등불을 이 땅에 밝히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님을 너도나도 다 함께 알아야 할 것이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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