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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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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유종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유종개 호 : 계유/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자는 계유‚ 본관은 풍산‚ 조선 명종 13년(1558)에 안동의 예안현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는 외가가 있는 봉화군 상운면 문촌리에서 자라며 글을 배웠다. 선조 12년에 진사가 되고 18년에 식년문과의 병과에 합격하여 사간원의 정언에 등용되었다. 전적으로 옮겨 일을 하던 중 선조 25년에 부모가 별세하여 고향인 상운면 문촌리에 내려와서 상중에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김중청과 더불어 봉화땅의 의병 600명을 모집하고 스스로 창의대장에 추대된 후 임흘‚ 윤흠신‚ 금은‚ 김인상 등과 함께 죽기로써 왜적과 싸울 것을 결의하였다. 일본은 소서행장을 중심으로 그해 4월 14일 부산에 상륙하여 파죽지세로 북상하면서 20일만에 서울을 함락하고 개전 40일만에 평양을 함락하였다. 왕은 의주로 피난가고 조정에서는 이덕형을 중국에 파견하여 지원병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명이 우리나라를 돕도록 결정하고 이여송의 10만대군이 북하는 일본군을 공격하면서 남쪽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이듬해 초순 모리 요시나리가 인솔하는 약3천명의 왜병이 함경도에서 동쪽으로 남하하다가 강원도 삼척을 경유하여 안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선생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일본군이 남하하는 길목이 되는 화장산의 전피현 고개에 의병을 매복시키고 기회를 노렸다. 6백여명의 의병들은 적을 무찌르겠다는 정신력 하나만을 가지고 선생의 명령에 따라 화장산 깊은 계곡의 숲 속에 숨었다가 이 곳을 지나가는 왜적들에게 일시에 공격을 가하여 적을 무찌르고 기치(旗幟)도 빼앗았다.그리고 놀라서 도망가는 적을 쫓다가 복병을 만나서 죽기로써 싸우다가 선생을 위시한 전원이 전사하고 말았다. 3천의 왜병들은 한국민의 강한 저항 정신을 깨닫고 감히 안동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사람이 적은 영양‚울진 방면으로 철수하였다. 그후 유종개 선생의 유해를 찾지 못하여 외가가 있는 상운명 문촌리 주민들이 그곳의 마장산에 의관장으로 장사를 지내 주었다. 그러나 선생에게는 자손이 업어 뫼가 허물어져가므로 후일 봉화 현감 박태적이 자신의 봉급으로 묘비를 세워 주었다. 임진왜란이 평정되고서 10여년이 지난 뒤에 나라에서는 유성룡의 추천으로 선생에게 예조참판의 벼슬을 내리고 문촌리에 충신각을 지은 후 선생의 혼을 위로하도록 하였다. 사림에서는 선생을 문계사에 향사하여 오고 있으며 충신각도 현재까지 전하여 온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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