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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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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윤황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윤황 호 : 성집/명은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윤황의 자는 성집‚ 호는 명은이며‚ 일찍이 태종 4년에 탄생하여 세조 12년 에 돌아가시니 향년 63세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재질이 특이하고 총명이 뛰어났으며 문종 신미년에 등과하여 높은 학행으로써 예조정랑에 특소 되었으며 그의 학행과 경륜은 얼마 안가서 호조판서까지 승차하였다. 때는 문종이 승하 하시고 어린 단종이 수양대군의 위세에 눌려 모두가 대군의 눈치를 살필 형편이라 조정의 공론이 분분할 때 공은 오직 꼿꼿하게 외롭고 어린 단종을 보필하는데 사력을 다하였다. 1456년 드디어 단종임금이 밀리고나서 화양정에 머무르게 도니 그는 허겁 지겁 달려가서 단종임금을 배알하고 통곡을 하니 어린 단종 또한 그 충성에 목이 매었었다. 그날부터 단종임금을 호종하기로 결심하고 온갖 정성을 다하였으며 매일 밤 분향축제로 상왕의 복위를 빌었지만 뜻밖에 붕어하시게 되니 그는 충분을 이기지 못하고 영해 칠보산중으로 자취를 감추었었다. 그의 후손이 영해에 그대로 남아 번성하여 바로 파평윤씨의 영해 입향시조가 되는 것이다. 윤황의 가계는 고려초의삼중대광태사 윤신달이 그의 시조요‚ 그 뒤 윤관‚ 윤은이 등의 명장 명신을 배출하였으며 그의 고조부는 좌명공신이조판서 윤곤이고 그의 아버지는 부사 윤사상이었다. 그의 부인은 세조비인 정희왕후의 이질녀로 세조가 보위를 찬탈할 때 세조를 따라 가문을 일으키기를 간청하였지만 그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고 남하하여 고결한 대의를 지키다가 갔다 한다. 그의 묘는 영해부 북쪽 월의동에 있으며 묘갈명과 신도비명 유사등이 전하고 있었으나 오랜 세월동안 풍우에 마멸되므로 그 후손들이 1977년 이를 다시 고쳐 세웠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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