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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거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이거 호 : 대방/활제 활동시기 : 조선시대 본 관 : 전주 출생시기 : 1623년(인조 1년) 상세설명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대방(?方)이며 호는 활제(?齊)로 호령대군 보(補)의 8세손이며 공조정랑을 지낸 광흡(光?)의 아들로 1623년(인조 1년)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뛰어나더니 장성하여 설문청의 글을 읽다가 "선비는 향상(向上)하는 공부가 있어야 되고 문장은 특히 토저(土詳)와 같다"는 글귀를 읽고 뜻한 바 있어 마음을 바꾸어 전에 즐겨 본 백가군서를 멀리하고 오로지 성현의 도에 힘써 주자학(朱子學)과 퇴계학(退溪學)으로 시작하여 염락관민지학(-?關 之學)을 거슬러 올라가 수사(?泗)에 이르기까지 미세한 말과 깊은 뜻으로 천인성명(?人?命)의 이치를 탐구하였고 정성과 공경스러움으로 더욱 더 공부에 힘쓰면서도 영리는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일찍 향시를 두 번 보고 별시를 두 번 본 적도 있었으나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치욕을 당한 뒤로는 벼슬에 뜻을 버리고 가족을 데리고 재를 넘어 산양에 숨어 살며 도학의 실진과 이기의 본원에 많은 잘못이 있음을 근심하여 연구를 계속하여 수십 년이 지나 공부가 확충되어 태극도에 주자의 해설을 더 추연하여 동유의 이기설을 조목 조목마다 변론하여 유교의 전체를 밝게 하였다. 또 주역‚ 예설‚ 천문‚ 산수‚ 책역 등의 책에도 다 통달하다시피 하였고 역대 인물들의 행적을 밝혀 후세의 귀감이 되게 하였다. 특히 춘추 대의를 중히 여겨 1644년 명나라가 망하니 청나라의 책력을 쓰지 않고 사사로 책력을 만들어 쓰며 시를 읊었는데 그 중 한 구절을 보면 "산 중에 책력 없어도 오히려 대명의 봄을 기록하네"라고 하였다. (山中無曆日?記?明春) 1645년에 성학의 요점과 정치의 폐막을 10조목으로 소를 지어 올리려 하였으나 목사가 위태롭다고 저지하였고 1650년에는 영남의 선비들과 함께 우계와 율곡이 향교 대성전에 모실려고 하는 것을 반대하는 소를 지으니 이는 곧 화를 당할 일이라 모두들 걱정하였으나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하기를 "나는 우리 도를 근심할 뿐이며 화를 당하거나 복을 입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라고 하였다. 그는 천성이 지극히 효도스러워 아버지가 병석에 있을 때는 손가락을 끊어 소생케 하였고 친상을 당하여서는 피눈물로 집상하였다. 1664년 61세로 세상을 떠나니 홍여하(?汝河)의 만사(輓詞)에 이르기를 동국에 한 이름 높은 선비라 칭찬하였으며 저서로 문집이 발간되었고 산북면 서중리 근암서원에 입향하였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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