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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이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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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돈영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이돈영 호 : /입암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본관은 연안‚ 호는 입암(立菴)이다. 일찍 사미헌 장복추(四未軒張福樞) 밑에서 학문을 닦아 정진하고‚ 뒤에 옥동(??)‚ 금오(金烏)‚ 도남(道南)‚ 의산(義山)‚ 자양(紫陽) 등 서당에서 강학하니 그의 심오한 학문을 배우려는 제자들이 구름같이 모였다. 평소 성품이 엄격하고 근엄하여 매일 아침 선조 사묘(祀廟)에 배알함을 게으르게 하지 않았고‚ 평소에도 관대(冠帶)로 정장(正裝)하여 일거 운동에 흩으러짐이 없었다. 그는 항상 학문에는 반상의 차별이 없다하여 비록 노비일지라도 학문을 배우려는 사람에게는 배움의 문을 열어 글을 가르쳤다. 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으며 시세(時勢)에는 일체 귀를 기울이지 않고 강학 구도(講學究道)에만 힘을 썼다. 제자들의 질문에는 항상 성의로써 대하였고‚ 84세로 세상을 떠나니 유림에서 유림장으로 예우했으며‚ 전국에서 모인 문상객이 1‚500명에 이르고 가마복인(加麻服人)이 28명이나 되었다. 유고는 대표작으로 태극도설(?極圖說)이 있고‚ 문집 6권을 남겼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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