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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득배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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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득배형제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이득배형제 활동시기 : 조선시대 상세설명 한 집안에 세 효자가 나서 향토민의 도의심을 진작시킨 분들이 있으니‚ 하빈 이씨 적의 선동의 후예들인 조마면 장암동의 이득배 형제들이다. 맏이인 효자 득배는 자를 공달이라 했으며 학행으로 교관의 벼슬에 나아갔었다. 둘째 득지는 자를 여달‚ 1550(명종 5)년에 태어나 벼슬은 부호군‚ 중추부사에 이르러 1635(인조 13)년 졸하여 묘는 두곡 도룡동에 있다. 셋째 득봉은 자를 계달‚ 1552(명종 7)년에 태어나 1621(광해 13)년에 작고하여 남천 원동에 잠들었다. 세 분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격문을 띄어 구국운동에 앞장서기도 하였으며 한강 정구와는 도의로써 평생 교의를 두터히 하였으며 정인홍이 이 분들의 덕망을 생각하고 친교 맺기를 원했을 때‚ "태어나기는 한 세상에 태어났지만‚ 살아가는 일은 각기 자기 세상을 사는 일이다."고‚ 권세를 휘두르던 인홍에게 서면으로 정식 친교를 거절한 이분들은 청고한 선비로도 크게 이름이 났다. 그러나‚ 이 세분의 특출한 점은 그 효행에 있었다. 90세가 넘은 노모를 모심에 난리 중에도 소홀함이 없었으며 정작 어머니가 돌아 가시사 백발이 성성한 70세의 세 형제 효자는 애통해 하여 음식도 제대로 먹지 않고 3년을 하루같이 상복을 입고 잠시도 묘소를 떠나지 않았다 한다. 인재 최현은‚ "백발 삼노효 신노 심불노 (白髮三老孝身老心不老) : 백발의 세 효자‚ 몸은 늙어도 효심은 시들지 않았네"라고 세 분의 효성을 극찬했으며‚ 사림에서도 다들 '삼노효'라고 일컬었다 한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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