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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이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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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석지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이석지 호 : 남곡 활동시기 : 고려시대 본 관 : 영천 상세설명 호는 남곡(南谷)‚ 시호는 충정공(忠貞公) 본관은 영천(永川)‚ 고려 신호위대장군(高麗神虎衛?將軍) 영양군(永陽君) 대영(?榮)의 5세손이며‚ 경덕제생(經德薺生)이며‚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추증된 흠(欽)의 아들이다. 1341년(충혜왕 복위2)에 진사가 되고‚ 1347년(충목왕 3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은 경상도 안겸사(按兼使)와 보문각(寶文閣) 대제학(?提學) 및 판도판서에 이르렀다. 중국 원나라의 조정에 사신으로 갔다가 양국 친교의 정표로 황제로부터 금대(金帶)를 하사받고 귀국하여 보니 이성계(李成桂)등의 활동으로 보아 장차 고려 왕조가 멀지 않아서 멸망할 대세가 보이매 「고려의 종묘 사직이 이제 멀지않아서 전복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대대로 큰 벼슬을 맡아온 충신의 가문이다. 이미 살아서는 나라를 도울 수가 없고 죽음을 각오한들 나라의 멸망은 면할 수가 없는 형세에 이르렀다. 모름지기 대부(??)는 이제 벼슬을 버리고 숨어 삶이 마땅하리라」 하며 포은(圃隱)‚ 목은(牧隱) 등 여러 현상(賢相)들과 이별을 나누었다. 그 길로 남곡 선생은 경기도 용인에 있는 남곡이라는 골짜기로 은둔하였다. 그리고 선생은 그 자손들에게 「우리 가문은 여러 대로 사관과 간의대와 보문각등에서 나라에 봉사하여 오던 충신의 집안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당하여서는 모름지기 야망을 버리고 숨어서 사는 것을 마땅히 행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스스로 폐가 망신을 자청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하고 하여 경계할 바 교훈을 내렸다. 그 후 조정에서는 그 인품을 여러차 례로 높은 벼슬에 보하려 했으나 선생은 끝까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남곡선생은 두문충현(杜門忠賢)이므로 기타 실기는 기록으로 남겨지지 못하고 있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10권 용인현(龍仁縣)편에 고려 삼은(三隱)의 한 분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적은 남곡기(南谷記)가 실려 있으니 이 글을 통하여 보면 그 당시의 국가 윤리관으로서 더구나 전 왕조(前?朝)의 중신(重臣)으로써 그러나 벌써 기울고 있는 중원(中原)의 형세와 더불어 이 땅에서 또한 무르익어 가고 있는 욱일충천(旭日沖?)과 같은 신왕조(新?朝)의 탄생을 이미 도저히 어찌할 수도 없었던 한 망국충신(亡國忠臣)의 헤아리기 어려운 심경과 그 딱한 처신을 엿볼 수 있다 하겠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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