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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이안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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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안적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이안적 호 : 구계 활동시기 : 조선시대 본 관 : 흥양 출생시기 : 1621년 상세설명 이안적(李安迪)의 본관은 흥양(興陽)‚ 호는 구계(龜溪)라고 하였으며‚ 청백리 이언(李堰)의 8세손으로 1621년에 태어나 1708년 88세의 장수를 누리고 돌아가신 분이다. 8세 때 소학을 배웠는데 애친(愛親)이란 글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고‚ 옛 사람인 효자왕부(? ) 왕상(?祥)의 효행에 감동하여 남의 자식된 자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야 한다고 결심하고 부모 봉양에 성심을 다하였다. 그러던 중 친환(親?)을 당하자 잉어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동설한임을 잊고 20여 리밖에 있는 병천(屛川)에 가서 무작정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큼직한 잉어가 한 마리가 얼음 위로 뛰어 오르지 않은가? 하늘이 주신 것이라 생각하고 봉친하였더니 많은 차도를 보았다고 한다. 몇 년 후 다시 친환이 위중하여 상주지방의 명의 김모씨에게 달려가 약을 구해 집으로 오던 중 큰 범이 길을 가로막고 있으므로 "부친 병이 위중하여 약을 구하여 가는 길이니 살려 달라"고 호소하였더니 범이 되돌아서 꼬리를 낮추고 앞으로 가는 지라 그 뒤를 따라가 100여릴 길을 하룻밤 새에 무사히 돌아왔다. 당상을 당하여서는 먼 산소를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성묘를 하였고 의복과 행실을 항상 조심하여 예의에 어긋남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의흥군 내에서 효자로 이름이 났다. 또한 옛날 의흥군 화산(華山)을 신령군민이 빼앗아 화산 주변의 경작 및 재목과 약초 등을 마구 탈취하여 감에 선생은 여러 동지를 규합하여 투쟁도 하고‚ 송사(訟事)하였다. 그러던 중 신령군 측의 모함을 받아 죄 없는 자가 서해 지방으로 유배까지 당했다. 그러나‚ 선생은 끝까지 굴하지 않고 투쟁을 하여 끝내는 화산을 의흥군 소속으로 되돌려 받아 군민의 원한을 설분(雪憤)하고 군의 체면을 유지하였으므로 모든 군민은 물론이요‚ 관가에서까지 선생의 공로를 높이 칭송하여 향토지에 전하여지고 있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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