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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약동(李約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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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명
이약동(李約東)
저작(권)자
저작자 미상 (저작물 2267374 건)
출처
이용조건
KOGL 출처표시,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새창열림)
공표년도
창작년도
분류(장르)
어문
요약정보
이약동(李約東) 호 : 노촌(路村) 활동시기 : 조선시대 본 관 : 벽진 출생시기 : 1416년(태종 16년) 출 생 지 : 1416년(태종 16년) 시대 : 조선시대 상세설명 내 살림 가난하여 나눠 전할 것 없고 오직 있는 것은 쪽박과 낡은 질그릇 뿐 황금이 가득한들 쓰기에 따라 욕도 되거늘 차라리 청백으로 너희에게 전함만 못하랴. 이 시는 청백리 이약동이 자손에게 경계하는 시로 남긴 것이다. 1416년(태종 16년)에 현령 덕손과 고흥류씨 사이에서 김천 하로(양천동)에서 태어났다. 일찌기 강호 김숙자의 문하생으로 영남 사림파의 종주인 강호의 아들 김종직을 비롯한 조위 등과 연령차이가 있으나 깊은 교우를 맺었다. 26세에 진사과에 합격‚ 36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올랐다. 그의 관직은‚ 사담직강을 비롯하여 감찰(38세) 황간현감 사헌부지평(42세)‚ 이듬해 어버이 봉양을 위하여 사직했다가 청도군수(43세)‚ 다시 어버이 병 간호로 사임‚ 어버이 돌아가시자 48세에 탈상하고 의전과 종부사정(50세) 으로 당상관이 되고‚ 귀성부사로 나아갔다가 병으로 사임‚ 복직하여 제주목사(55세)‚ 경상좌도수군절도사(59)세 대사간(62세) 재직중 천추사로 중국에 갔었고 경주부윤(62세) 호조참판(67세)전라도관찰사(71세) 한성부윤(72세) 이조참판‚ 개성유수(74세)를 제수받고 청백리로 기록되었다. 병으로 사퇴‚ 다시 지중추부사(75세)를 받고 기로소에 들었다. 고령으로 사임하고 이듬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공이 세상에서 추앙받는 까닭은 40여년간 공직생활에 추호의 사심없이 청백했다는 점이다. 앞에서 계자시에서 보듯 76세로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오막살이 집 한 채 뿐이었다고 한다. 1493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나라에서는 동부승지 이자건을 예관으로 파견하여 제문을 하사 하였다.  
저작물 파일 유형
저작물 속성
1 차 저작물
공동저작자
1유형
수집연계 URL
http://www.gb.go.kr
분류(장르)
어문
원문제공
원문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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